출입국 대합실 게시판에 붙은 안내문
위 유료 화장실, 아래 버스를 개조한 카페
위 1시간 달려온 우골라야 역, 아래 조은사람들 투어 그룹
이상설 선생 유허비 앞 안내문, 아래 우리 일행 단체사진
최재형 선생 살던 집
위 마트 진열대에 한국산 라면, 아래 육류는 모두 가공 식품으로 판매
위 고집스럽게 호텔 안내문에는 러시아 글 외는 없다, 아래 비치된 팜프렛에는 영문과 한자로만 표시
승용차는 대부분 일제 차, 하지만 에어콘은 LG 일색이다.
역 대합실에 유일하게 다국어로 만든 간판이 걸려 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여행 후기를 많이 올려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은 관련 정보를 얻기에 충분 할 것이다. 하지만 동일한 지역을 동일 조건으로 여행을 해도 각자 보고 느끼는 것은 각각 다를 것이다.
러시아는 대한민국이 속한 아시아 대륙의 북편 서쪽 발트 해에서 동쪽으로 알라스카가 있는 곳 까지 거의 지구둘레의 절반 둘레를 차지하는 나라이다. 그런 나라의 동쪽 연해주(沿海州, 프리모르스키) 라고 하는 지역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여행 하면서 느낀 점을 말하고 싶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대한민국처럼 좁은 땅에서도 남과 북으로 분단이 되어있고 그 남쪽에서 지역마다 말씨가 너무 달라서 나이든 어른들의 말은 서로 알아듣기조차 어려운 것을 잘 알 것이다. 그런 가운데 행정구역 분류상으로 울릉도가 경상북도 울릉군인데 울릉도 사람은 행정구역에 맞게 주민들의 억양은 경상도 사투리를 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와 같이 행정구역이 같으면 같은 말씨를 쓰듯이 러시아는 지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기고 있는 나라이지만 주거 식생활 방식이 모스크바가 있는 경도(Longitude)상 유럽에 속한 생활 방식이 그대로 동쪽 끝에까지 동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은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지역에 따르기 보다는 정치/통치적 불럭에 기인(起因)하는 영향이 더 크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처음 항구에 배(Ferry)가 접근 되면서 특별히 다른 점을 느끼지 못 했지만 하선을 시작 하면서 출구에는 단체별 하선 순서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고 방송으로 하선 순서 안내방송을 했지만 이해 할 수 없이 지루하고 답답함을 느껴서 출구에 갔다가는 객실에 누웠다가는 또 가보고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싶어 조바심을 내곤 했었다.
정확히 시간을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총 하선 시간이 2시간은 족히 됐을 것으로 생각 된다. 우리 2사람은 인원수가 적어서 특별히 순서가 정해지지 않았는데 하선 통제하는 승무원에게 소속 된대가 없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1번 러시아인 2번 조선대 학생 단체 3번째로 자유여행으로 나가라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조금 빨리 하선을 하게 됐다.
입국심사를 하는 곳에서 가서야 그렇게 늦어지는 이유를 알게 됐다. 근무자는 여권과 입국신고서를 받고는 표정 없는 얼굴로 “당신은 바쁘지만 나는 바쁘지 않습니다.” 라는 표정으로 느긋이 체크를 한다. 어렵사리 최종 대합실 문에 들어서니 “조은사람들”이란 팻말을 든 가이드 “크리스티나”를 만났다.
아가씨 는 약간 이국적인 미모의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여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개인 프라이버시관한 질문이라 참았다. 그런데 뒤에 앉아있던 우리 팀도 아닌 분이 질문을 하니까 본인은 어머니가 러시아인 아버지 한국인 이고 한국에서 고등하교까지 공부했고 현재 러시아에 살고 있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내가 나중에 버스 안에서 한 말이지만 “크리스티나는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이점(Advantage)을 가졌으니” 그 이점을 잘 살리면 좋을 것이라고 격려를 해 주었다. 아직도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행은 나타나지 않았다.
앞에 있는 다른 여행사 가이드에게 왜 이렇게 늦느냐고 물었더니 그 가이드 말은 간단명료하게 “여기는 러시아 입니다”라고 하는 말 한마디에 더 이상 무슨 설명을 붙일 필요가 없이 설명이 된 것이다. 입국심사대에 다른 나라만큼 컴퓨터 화 되지 못한 것과 확실하게 하는 것이 사명인 그들이 성급하게 처리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 느껴졌다.
다른 나라에 가면 출입국장에 들어서면 각 중요국가의 언어로 안내 팻말이 있는 것이 일반적인 것인데 이 나라에서는 뾰족한 콧대만큼이나 자존심이 강한 것인지 아니면 “답답하면 당신들이 러시아 글을 배워라” 라는 식으로 생각하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영문 안내판조차도 볼 수가 없었다.
대합실에 함께 투어를 해야 할 팀을 기다리는 동안 벽에 붙은 A4용지 크기의 출입국 관련 글이 붙어 있었는데 거기에서 겨우 한글 A4 한 페이지를 찾을 수 있었다. 물론 한글만이 아니라 중요국가 언어로 번역된 것이 있었다.
내가 처음 외국 여행을 가게 됐던 84년 당시에 미국 내 중요공항에 안내판에는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안내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86년에 태국을 여행하면서 거리에 관광 상품을 들고 다니면서 판매하는 사람들이 얼른 일본어 말해서 반응 보고 아니면 한국어로 말하는 적극적인 상행위를 하는 것을 나는 매우 배울 만한 상술이라고 생각 했었다.
그런데 이번 러시아 극동지역 블라디보스토크에 처음 입국을 하면서 느낌은 이 나라 사람은 돈 버는데 별 관심이 없거나 아니면 아시아권에 인접한 나라들에서 유입되는 동양계 사람에 대한 그들만의 어떤 우월감 같은 것이 작용해서인지 알 수는 없다. 아니면 사회주의 국가로 오래도록 살아온 것 때문에 발현되는 그들의 사고인지 알 수는 없다.
나는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하바롭스크 친구와 채팅을 하면서 나는 당신의 나라가 가진 장점과 단점이 있다고 말을 했다. 물론 이것은 러시아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또한 장점과 단점이 있을 것이지만 내 주변에 좋고 나쁨에 익숙하게 되어 판단이 흐려진 것 때문에 우리의 장단점은 내가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그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 해 본다.
블라디보스토크는 경도(longitude)상 위치는 아시아 끝단에 아시아 문화권과 경계를 같이하고 있지만 건축의 양식은 서쪽 유럽형이고 모스크바 인근에만 있을 줄 알았든 인도의 타지마할이나 중동의 모스크를 닮은 양파 모양의 지붕을 금색 번쩍이는 금속으로 덮은 성당은 동양권에 흔히 볼 수 없었던 것으로 느꼈다.
또한 길거리에 한국처럼 요란한 광고 간판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도로에는 교통 신호등이 아주 드물게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고, 교통신호가 있는 곳에서는 인도와 차도 모두에 카운트다운 방식의 신호등을 설치한 곳이 이색 적이다. 우리는 인도 신호등에만 카운트다운 방식을 채택한 것을 나는 불만을 가졌었는데 러시아에서 바로 내가 바라던 방식을 볼 수 있었다.
야경을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 가이드 크리스티나에게 길거리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젊은이의 (나베레즈나야) 거리를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어 보았다. 가이드 말이 그렇게 하려면 호텔에서 택시를 호출해서 갈 수 있다고 해서 말 한 미디도 안 통하는 어려움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곳의 밤 풍경을 볼 수 없어서 매운 섭섭했다. 나의 기대는 가이드가 시간을 내어 몇 사람 모아서 별도 비용을 쓰면서 밤풍경을 보여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다.
길거리에 사람들은 옷맵시가 단정하고 가끔 아주 깔끔하고 우아한 고상한 정장을 차림의 여인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사람이 여행 온 사람인지 현지인 인지는 확인을 할 수 없었다. 길거리에 여인들 중 청바지를 일부러 너덜너덜 해어진 바지를 입은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한국처럼 아주머니들이 빠글빠글하게 파마머리를 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이 나라에 잠시 머무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이 식당과 호텔을 제외한 화장실이 모두 유료라는 것이다. 오줌 한 번 누어도 최소 15 ~ 20루블을 지불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동전이 없기도 하지만 그런 곳에서 오줌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한 번도 이용 해 보지 않았다.
나베레즈나야 거리를 아침 일직 일정이 잡혀 우리가 도착 했을 때 그곳 이동식 화장실을 중년 부인이 열심히 청소하고 걸레로 깨끗이 닦는 장면을 보았다. 유료 화장실을 개인이 관리하고 돈을 받는 모양이다. 달리 생각하면 그러한 유료화장실이 화장실을 깨끗이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 일자리도 만들 수 있는 하나의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 장사를 하기위해 버스를 개조하여 버스 바디를 벽돌 문양으로 그려 이색적인 카페도 있었다. 한국 이라면 당연히 그 자리에는 커피 자판기가 설치되었을 것이지만 사람이 직접 차를 파는 곳이 훨씬 인간적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이 선생님과 첫날 아침일직 안개가 자욱한 호텔주변 길거리를 걸어서 산책을 해 보았다. 이곳은 아침 안개가 짙게 끼는 것이 특징으로 보인다. 아침 6시경에 거리 풍경은 한적하고 가끔씩 시내버스가 지나가고 버스 정류장에는 아침 출근을 하려는 사라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장면이 조용하고 한가롭게 느껴졌다.
우리가 하는 말로 한국인이 미인이 많은 것은 외국에서 한국은 성형 천국이라는 말을 듣고 한국 아이돌이 미인이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을 따라하고 싶은 것 때문에 한국에 미용성형 수술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 늘어나고 한국화장품이 좋아서 미인이 많다고 하여 그 화장품이 세계적인 인기 상품이 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체형 상 러시아 여인이 나는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한국을 포함하는 동양계는 거의가 나무젓가락처럼 일자형이지만 러시아인은 가슴과 엉덩이가 크고 코는 날카롭기로 프랑스인 과 같고 얼굴이 작은 것이 전형적인 백인계로 내가 볼 때는 한국여인보다 더 미인으로 보였다.
마지막 날 저녁 어렵게 왔는데 룸메이트 끼라도 보드카를 한 병 사서 취해 볼까하여 가까운 마트에 갔다. 자그마한 마트에는 아주머니 한 분이 근무한고 입구 쪽에는 남자 한 분이 의자에 있는 것이 분위기가 손님 같지는 않아 보였다. 진열장은 고가 상품인 진열된 곳으로는 고객이 직접 상품을 고를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고 자질구레한 값 산 상품은 직접 고를 수 있게 진열 되어 있었다.
밖에서 진열장을 들여다보고 손짓을 하면 보드카라고 하고 말을 하니 그 말은 알아듣지만 더 이상 어떤 말도 통할 수가 없다. 호텔 옆 마트라면 간단한 인사정도는 고객을 위해 할 수도 잇을 법한 것이지만 이 곳 역시 아주 사무적인 자세이다. 아직은 자본주의 시장경재 체제가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그냥 추측 할 뿐이다.
말이 안 통해서 다시 보드카라고 말 하니 진열된 몇 종의 보드카 중에서 어떤 납작한 병을 들어 보이는 것 고개를 끄덕이며 한 병을 겨우 살 수 있었다. 과자 한 종류를 집어서 대금을 지불하고 호텔방에서 우리는 호텔 창밖을 내다보면서 보드카를 마셨는데 그 술 맛은 첫 날 킹-크랩을 먹던 날 식당에서 제공한 둥글고 긴병에 담긴 것보다 월신 술맛이 좋았다.
우리가 머물렀던 호텔 이름이 Astoria Hotel 이고 호텔 방에 TV는 채널은 많지만 러시아어가 아닌 어떤 언의 방송도 없었다. 영어로 방송이 된다 해도 시원스럽게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지나치게 국수주의적인 사고를 가진 나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어느 나라이든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여 국가 이익을 꾀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지만 러시아는 달랐다는 생각이다.
우리 러시아 횡단 철도(TSR)를 블라디보스토크 역에서 우골라야 역까지 열차로 이동하 러시아 열차의 승차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외관 보기에 비해 주행은 정숙하고 객실 안은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좌우 3인석으로 우리의 열차보다 객실 폭이 더 넓은 것으로 보인다.
4호 열차를 탔는데 한국과 중국에서 온 여행객들과 지역 주민 특히 노인이 시장나들이 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로 열차는 만원이고 내가 앉아서 가다가 어떤 시장 짐을 든 할머니에게 내 자리를 양보하고 서서 가는 양보의 정신을 보여 주었다.
우골라야 역에서 거기까지 쫓아온 우리 버스를 타고 또 다시 2시간 가까이 이동을 하는데 버스의 속도계는 90 Km를 넘지 않았다. 크리스티나에게 물어보니 여기 관광버스는 속도제한을 90 Km로 하드웨어적인 제한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더 이상 속도를 낼 수 없게 된 기계적인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2시간을 달리는 동안 차창 밖 풍경은 온통 푸른 낙엽수로 숲을 이루고 거의 모든 지역이 지평선에 가까운 지형이었다. 한 숨도 졸지 않고 전 구간을 보면서 갔지만 한 그루의 소나뭇과 수종을 볼 수 없었다. 일본이라면 주로 편백나무가, 한국이라면 주로 소나무 종류가 숲을 이루고 있는데 너무 큰 차이가 나는 자연 환경이다.
길 가에는 거의 마을이 없는데 그럼에도 가끔 길가에 노점상이 있고 스쳐지나가는 장면에서 수박을 파는 곳과 알 수 없는 상품을 간이 진열한 장변을 볼 수 있었다. 인간이 사는 곳 어디이든 삶의 노력은 있게 마련이다. 도로변에는 유료 화장실이 없는 관계로 우리는 중간에 어쩔 수 없이 노상방료를 하기도 했었다.
우리가 가는 목적지는 고려인이 약 1만 명이 살고 있다는 우수리스크이다. 가장 큰 목적지는 수이푼 강가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 유허비가 있는 곳과 발해 절터 성터가 있다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터를 알 수는 없었고 그곳은 너무나 광활한 평야로 끝없이 이어지는 푸른 초원 구릉지는 바람의 언덕이었다.
내 카메라에 잡힌 영상에는 멀리 해자(垓子/垓字)로 이용 됐다는 솔벤 강인지는 모르지만 강물도 보인다. 이상설 선생 유허비가 있는 장소에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소나무가 둘레에 심겨 자라고 있었다. 바로 옆 수이푼강에는 마치 금방 소나기가 내린 강물처럼 짙은 황톳물이 흐르고 강가에는 이름 모를 수목이 욱어져 있었다.
고려인 이주 140주년 기념관 - 역사박물관을 방문하여 수난의 역사를 담은 동영상을 관람하고 전시된 기록 사진등과 현 그곳에서 발행하는 고려신문을 볼 수 있었다.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제각기 작지만 약간의 헌금을 놓고 방명록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흔적을 남기고 오게 된다. 이곳에는 최재형 선생 최후거주지라는 집이 관리가 되지 않은 상태로 있어 좀 보기가 좋지 않았다.
사실 나는 우리 역사적 사실을 잘 모르고 있어 여행 전에는 위에 언급한 2분을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이 나라의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잘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시 중심지역에 있는 혁명광장, 영원의 불꽃이 있는 2차 대전 참전 희생자 이름이 새겨진 비, 잠수함 박물관 등 시내에 가까이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약간 비사실적인 용사들 조각에는 당시에도 여군이 한께 조각되어 있었다.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독수리 전망대에는 전 세계에 유행하는 열쇠 매달기는 이곳도 똑같다. 파리 센 강변에서 시작이 됐는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우리 동네 못가에도 여지없이 열쇠는 매달리고 있다.
하바롭스크에 있는 친구 올가 씨는 이곳을 “Golden horn bay"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다녀온 유적지를 ”famous fourierist place"라고 표현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80% 에어컨은 LG 제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길거리에 보이는 승용차의 80%는 어림짐작으로 일본 자동차이다.
내가 직접 보지는 못 했지만 버스는 한국산 중고차를 많이 사용 한다고 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승용차는 우측 운전석이라 해도 큰 불편없이 운전이 가능하지만 버스는 우측 핸들 사용하면 승객 승하차가 좌측으로 된 것을 사용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트에는 한국산 라면이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보다 좀 더 추운 지역이기 때문에 느끼한 맛 보다 매운 맛 한국 라면이 더 좋아할 것으로 생각된다. 식품코너에는 우리처럼 생고기를 진열한 것을 볼 수 없고 대부분의 육류가 훈제 형으로 가공된 육류가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도 생고기 보다 가공된 육류를 좋아하는 식성으로 바뀐다면 육류의 출하조절이 되어 가격 변동이 적어 생산자와 소비자가 더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너무 짧은 기간이고 제한적인 곳만을 본 탓이라 아직도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여행에서 역시 크루즈 선을 이용한 여행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것이 가장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특히 대륙을 패기 하나로 뭉쳐 도전하는 젊은이들과 귀국하는 동안 배 안에서 만난 말도 안 통하지만 함께한 즐거웠던 시간 사람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나는 해외여행에서 우리와 다른 것을 느끼고 더 좋은 것들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지만 막상 돌아와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잛은 체험으로 러시아 전체를 평가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무엇보다 그들은 정해진 법을 잘 지킴으로 그 넓은 나라가 통치가 잘 된다는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여행은 우리와 같은 것을 확인도 하고 다른 것을 배우기도 하여 여행은 힘들지만 또한 즐거움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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