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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2017/01/14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서 개최한 탄기국 집회에서 우리는 또 만났다. 우측으로부터 대한민국 해병대 대령으로 전역하신 세계 여행 전문가 길-손님과 좌측 월남전에서 대한민국 군인으로 참전 했던 풍초님과 함깨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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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16일 월요일
탄기국 집회 가는 버스에서
2016년 9월 30일 금요일
가장 쓸만한 놈은 어는 것일까요?
옛말에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다"라고 했지만 그 말은 틀린 말이다. 잘 생겼다고 좋은 인간 아니듯이 값이 비싼 고급품은 그 값을 못했다. 지도자는 겉보기보다 속이 찬 진정으로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여기 사진은 내가 오래동안 사용 했던 볼펜과 근래 이래저래 가지게 된 대표적인 것을 모아 그와 관련 된 예기를 하고 싶다.
펜은 두말 할 것 없이 어떤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사용한다.
그런 중요한 필기구가 지금은 볼펜이 첫 번째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가장 좋은 필기구는 긴 글이나 그림을 그릴 때 끊임없이 잘 쓰여 지는 펜이 가장 좋은 것이라 하겠다.
가격과 잘 쓰여지는 목적에 무관하게 펜의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물론 펜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시계는 시간이 잘 맞고 고장이 나지 않는 시계가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좋은 시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목적에 맞는 기능 보다 외관과 돈을 얼마나 비싼 값을 주고 샀느냐를 가지고 좋다 나쁘다 평가하는 경향이 크다.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지금까지 20년 전부터 사용했던 고급 펜과 가장 최근에 가지게된 가장 값 싼 펜에서 그 실용도에 너무나 큰 차이가 있어 그간에 필기중에 속상했던 내용을 털어놓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사진에서 맨 우측 펜 세트는 이름 있는 브랜드 몽블랑 20년 전 구입, 그 다음이 많이 알려진 비싸지 않은 파커, 그 다음이 일제 샤프 겸 볼펜 3색, 선물 받은 국내산 멀티컬러 볼펜, 그 다음이 보험회사 사은품 터치펜 겸용 볼펜, 마지막 것이 가장 값싼 마누라가 4개들이 포장에 1000원을 주고 샀다는 볼펜이다.
내가 샀다면 적어도 가장 값이 싼 4개에 1000원짜리는 사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가끔 펜으로 뭔가를 기록을 하려고 하면 잉크가 나오지 않아 종이위에 몇 번 굴려 잉크가 나오도록 해서 쓰기를 하는데 쓰는 중간이 잉크 끊김이 생겨 매우 짜증스러웠다.
한 때 내가 가장 많이 사용 했던 일제 샤프 겸 멀티컬러 볼펜이고 그 다음이 몽블랑 볼펜이었는데 지금은 잉크가 떨어져서 몽블랑 잉크를 못 사서 대용품을 갈아 넣고 부터는 사용하기전 다른 종이에 한번 굴린 후에 사용 해야만 했다. 결재서류에 사인을 하다가 중간에 잉크 끊김이 발생 했다면 사인을 다시 해야 하는 아주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국제적인 중요한 서류에 사인을 할 때는 옛 부터 사용해온 수용성 잉크를 사용 하는 고전적인 펜을 사용하는 장면을 TV에서 종종 보았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인중에 잉크 끊김 때문에 아직도 중요한 사인에는 잉크-펜을 사용하는 것일게다.
그래서 한국에서 잉크 펜이 아닌 볼펜을 사용해서 기록을 할 때는 가장 값이 싼 사진의 맨 좌측의 펜이 가장 좋은 펜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실용이 중요하진 않은 폼으로 사용할 때는 값 비산 펜을 사용하시라 말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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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6일 수요일
보조 배터리 때문에 좋았던 여행 경험
| 요즘은 휴대폰, 디지털 카메라 같은 휴대용 전자장치가 필수품이다. 특히 휴대폰은 절대적인 위치에 있다. 외출 할 때는 휴대폰이 없다면 디지털 치매 현상으로 가족 간에 연락마저도 할 수가 없다. 내가 휴대본이 없다면 외부활동을 할 수 없고 집에서는 광-케이블이 절단되면 TV, 전화, 인터넷등 집안이 마비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난해 아들이 삼성 Galaxy A8 폰으로 바꾸어 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사은품으로 TSST TB104NA라는 보조 배터리가 배달되었다. 나는 월 1회 등산을 하는 관계로 매우 필요할 것으로 생각 했다. 그래서 등산을 할 때는 이 배터리를 휴대하고 다니곤 했다. 하지만 국내 등산 가는 정도로 이 보조 배터리가 필요한 경우 폰을 만 충전을 해서 간다면 예비 배터리는 필요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사은품으로 받은 그 배터리는 한 번 도 그 가치를 느낀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4박 5일 블라디보스토크로 크루즈 여행을 떠나면서 만-충전을 해서 가지고 갔다. 그리고 첫 날 저녁 선상에서 만난 젊은이들과 같은 방을 쓰게 됐다. 그 젊은이 중 한 사람이 휴대폰 충전을 하기위해 선내에 전원 콘센트를 찾다가 충전할 장소를 발견하지 못 하였다고 했다. 그래서 내 예비 배터리를 사용 하라고 했더니 그 젊은이들도 모두 예비 배터리를 휴대하고 있어 당장에 사용을 못 해서 충전기 사용할 콘센트를 찾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들은 각각 내가 가진 것 보다 용량이 큰 보조 배터리를 휴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젊은이들과 담소를 나누는 동안에 부주의 하여 휴대폰이 동영상 촬영상태가 된 것도 모른 채 긴 시간을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선상에 가게 되었을 때야 내 휴대폰이 계속 동영상 촬영상태가 되어 배터리가 절반이나 소모가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취침을 하기 전에 휴대폰을 보조배터리로 휴대폰에 연결 시켜놓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완벽히 해결이 되어 처음으로 그 진가를 알게 됐다. 사실 휴대폰은 전화를 사용하기보다 기능이 향상된 사진촬영 모드가 더 필요했기 때문에 휴대폰은 여행 때는 필수적인 개인 도구가 된 것이다. 나는 콤팩트 카메라도 함께 휴대한 터라 어느 것으로든 촬영을 할 수는 있지만 휴대폰 사진의 장점은 가로로 촬영을 했을 때 넓은 화면의 장면사진은 파노라마 사진처럼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즐겨 사용하는 것이다. 귀국하는 선상에서 이선생님 폰이 배터리가 다운 직전이 됐다고 하여 예비 배터리 빌려드려 70% 수준으로 충전을 회복시키고, 이어서 내 카메라가 방전이 되어 만 충전을 시켰다. 그렇게 하고도 아직 절반이나 남은 상태였다. 돌아오는 열차에서 하바롭스크 친구와 와츠엡으로 채팅을 하면서 충전을 했는데 마지막 남은 양으로 90%까지 회복시킬 수 있었다. 정말로 이번 여행에서 예비 배터리의 도움을 톡톡히 본 것이다. 내가 전자관련 제조업을 했던 관계로 배터리충전에 관한 의아심은 일반인보다 더 큰 것도 사실이다. 그 이유는 예비 배터리의 특성이: 3.63V 10.400mA, Input 5V 2.1A, Output 5V 1.0A or 2.1A 와 같이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 배터리전압은 5V가 아닌 3.63V이다. 공급측 배터리 전압이 낮아져도 충전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전압/전류 제어회로가 내장 된 것으로 예상을 할 수 있다. 먼길을 떠나는 분은이러한 예비 배터리와 충전기를 준비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참고로 지금의 전자 기기에서 콘센트 풀러그가 맞기만 하면 전압과 주파수는 상관이 없다. |
2016년 7월 1일 금요일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2)
윗 사진: 러시아 세르게이, 이선생 아래 좌측 키르기스탄 오무르 블랙
위 사진 가운데 이름 국적 안 물어 봤습.
| 블라디보스톡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2): 돌아오는 배에서는 1208-5, -7번객실을 배정 받았다. 처음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우리 둘만이 사용 할 것 같아 문을 잠근 후 외출을 하고 들어와보니덩치 큰 아시아 계 청년이 2 그리고 러시아 인 중년 1명그리고 턱수염이 시커먼 후리후리한 러시아인 그는 사람들과 눈빛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느낌을 주는 인상의 러시아 인이 어울리고 싶지 않은 눈치의 사람과 함께 방을 쓰게 됐다. 방 바닥에 앉아 이선생과 나는 먹다 남은 보드카를 마시다가 아래에 있는 러시아인과 동양계 친구들과 한잔 하지고 제안 하여 함께 서로 소개를 하면 술 자리를 같이 했다. 술이 모자라 이선생은추가로 맥주를 매점에서 가져와 잠시나마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함께한 러시안세르게이, 키르키스탄에서 왔다는 오무르 벡, 이선생 그리고 나는 자라를 함께 하였다.그런데 젊은 키르키스탄 인은 영어로 자기이름을 겨우 쓸 수 있는 것 이외에는한 마디 한 단어도 통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러시아인과 다른 사람들과는 다소 의사 소통이 되는 것같았다. 우리와 자리를 함께하지 않은 턱수염 짙은 러시아인은 목적지가 일본 사카이미나토라고 했다. 어렵게 알아들은 짐작으로 키르키스탄 친구는 러시아에 3개월 있다가한국 내에 3일 있다 러시아로 다시 간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어디까지나 나의 불확실한 추측 일 뿐이다. 우리는 국내 입국도 좀 요령을 피워 제일 앞에서 하선을 하여 다른 사람보다 먼저 입국 하고 동해역에서 부전행 14:02분을 표를 사고 난 후 점심을 먹고 역 대합실에 오니 그 키르키스탄 친구가 와서 매표를 하고 있었는데 목적지가 김제인 것으로 생각 된다. 우리 말과 영어를한마디도 못 하는 친구가 그 먼 곳을 간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말이 통하지 않아 이 친구가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힘 들어 점심도 먹지도 못 한것 같아 수퍼마켓에서 빵 4개를 사서 그 친구에게 주고 내 이-메일주소를 적어 주었다. 혹 도움이 필요한 경우 연락을 할 수 있게 하고 시간이 되어 우리가 먼저 출발을했다. 한 방에 같이 하루를 지낸다는 것 만으로 친구가 되고 말도 통하지 않지만 같이하는마음 만으로 서로의 경계심을 허물고 나이 불문 친구가 되어 함께 지낸 하룻밤이 우리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라 생각 된다. |
2016년 6월 30일 목요일
블라디보스톡 여행 보고 느낀 것
출입국 대합실 게시판에 붙은 안내문
위 유료 화장실, 아래 버스를 개조한 카페
위 1시간 달려온 우골라야 역, 아래 조은사람들 투어 그룹
이상설 선생 유허비 앞 안내문, 아래 우리 일행 단체사진
최재형 선생 살던 집
위 마트 진열대에 한국산 라면, 아래 육류는 모두 가공 식품으로 판매
위 고집스럽게 호텔 안내문에는 러시아 글 외는 없다, 아래 비치된 팜프렛에는 영문과 한자로만 표시
승용차는 대부분 일제 차, 하지만 에어콘은 LG 일색이다.
역 대합실에 유일하게 다국어로 만든 간판이 걸려 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여행 후기를 많이 올려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은 관련 정보를 얻기에 충분 할 것이다. 하지만 동일한 지역을 동일 조건으로 여행을 해도 각자 보고 느끼는 것은 각각 다를 것이다.
러시아는 대한민국이 속한 아시아 대륙의 북편 서쪽 발트 해에서 동쪽으로 알라스카가 있는 곳 까지 거의 지구둘레의 절반 둘레를 차지하는 나라이다. 그런 나라의 동쪽 연해주(沿海州, 프리모르스키) 라고 하는 지역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여행 하면서 느낀 점을 말하고 싶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대한민국처럼 좁은 땅에서도 남과 북으로 분단이 되어있고 그 남쪽에서 지역마다 말씨가 너무 달라서 나이든 어른들의 말은 서로 알아듣기조차 어려운 것을 잘 알 것이다. 그런 가운데 행정구역 분류상으로 울릉도가 경상북도 울릉군인데 울릉도 사람은 행정구역에 맞게 주민들의 억양은 경상도 사투리를 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와 같이 행정구역이 같으면 같은 말씨를 쓰듯이 러시아는 지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기고 있는 나라이지만 주거 식생활 방식이 모스크바가 있는 경도(Longitude)상 유럽에 속한 생활 방식이 그대로 동쪽 끝에까지 동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은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지역에 따르기 보다는 정치/통치적 불럭에 기인(起因)하는 영향이 더 크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처음 항구에 배(Ferry)가 접근 되면서 특별히 다른 점을 느끼지 못 했지만 하선을 시작 하면서 출구에는 단체별 하선 순서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고 방송으로 하선 순서 안내방송을 했지만 이해 할 수 없이 지루하고 답답함을 느껴서 출구에 갔다가는 객실에 누웠다가는 또 가보고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싶어 조바심을 내곤 했었다.
정확히 시간을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총 하선 시간이 2시간은 족히 됐을 것으로 생각 된다. 우리 2사람은 인원수가 적어서 특별히 순서가 정해지지 않았는데 하선 통제하는 승무원에게 소속 된대가 없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1번 러시아인 2번 조선대 학생 단체 3번째로 자유여행으로 나가라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조금 빨리 하선을 하게 됐다.
입국심사를 하는 곳에서 가서야 그렇게 늦어지는 이유를 알게 됐다. 근무자는 여권과 입국신고서를 받고는 표정 없는 얼굴로 “당신은 바쁘지만 나는 바쁘지 않습니다.” 라는 표정으로 느긋이 체크를 한다. 어렵사리 최종 대합실 문에 들어서니 “조은사람들”이란 팻말을 든 가이드 “크리스티나”를 만났다.
아가씨 는 약간 이국적인 미모의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여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개인 프라이버시관한 질문이라 참았다. 그런데 뒤에 앉아있던 우리 팀도 아닌 분이 질문을 하니까 본인은 어머니가 러시아인 아버지 한국인 이고 한국에서 고등하교까지 공부했고 현재 러시아에 살고 있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내가 나중에 버스 안에서 한 말이지만 “크리스티나는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이점(Advantage)을 가졌으니” 그 이점을 잘 살리면 좋을 것이라고 격려를 해 주었다. 아직도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행은 나타나지 않았다.
앞에 있는 다른 여행사 가이드에게 왜 이렇게 늦느냐고 물었더니 그 가이드 말은 간단명료하게 “여기는 러시아 입니다”라고 하는 말 한마디에 더 이상 무슨 설명을 붙일 필요가 없이 설명이 된 것이다. 입국심사대에 다른 나라만큼 컴퓨터 화 되지 못한 것과 확실하게 하는 것이 사명인 그들이 성급하게 처리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 느껴졌다.
다른 나라에 가면 출입국장에 들어서면 각 중요국가의 언어로 안내 팻말이 있는 것이 일반적인 것인데 이 나라에서는 뾰족한 콧대만큼이나 자존심이 강한 것인지 아니면 “답답하면 당신들이 러시아 글을 배워라” 라는 식으로 생각하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영문 안내판조차도 볼 수가 없었다.
대합실에 함께 투어를 해야 할 팀을 기다리는 동안 벽에 붙은 A4용지 크기의 출입국 관련 글이 붙어 있었는데 거기에서 겨우 한글 A4 한 페이지를 찾을 수 있었다. 물론 한글만이 아니라 중요국가 언어로 번역된 것이 있었다.
내가 처음 외국 여행을 가게 됐던 84년 당시에 미국 내 중요공항에 안내판에는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안내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86년에 태국을 여행하면서 거리에 관광 상품을 들고 다니면서 판매하는 사람들이 얼른 일본어 말해서 반응 보고 아니면 한국어로 말하는 적극적인 상행위를 하는 것을 나는 매우 배울 만한 상술이라고 생각 했었다.
그런데 이번 러시아 극동지역 블라디보스토크에 처음 입국을 하면서 느낌은 이 나라 사람은 돈 버는데 별 관심이 없거나 아니면 아시아권에 인접한 나라들에서 유입되는 동양계 사람에 대한 그들만의 어떤 우월감 같은 것이 작용해서인지 알 수는 없다. 아니면 사회주의 국가로 오래도록 살아온 것 때문에 발현되는 그들의 사고인지 알 수는 없다.
나는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하바롭스크 친구와 채팅을 하면서 나는 당신의 나라가 가진 장점과 단점이 있다고 말을 했다. 물론 이것은 러시아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또한 장점과 단점이 있을 것이지만 내 주변에 좋고 나쁨에 익숙하게 되어 판단이 흐려진 것 때문에 우리의 장단점은 내가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그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 해 본다.
블라디보스토크는 경도(longitude)상 위치는 아시아 끝단에 아시아 문화권과 경계를 같이하고 있지만 건축의 양식은 서쪽 유럽형이고 모스크바 인근에만 있을 줄 알았든 인도의 타지마할이나 중동의 모스크를 닮은 양파 모양의 지붕을 금색 번쩍이는 금속으로 덮은 성당은 동양권에 흔히 볼 수 없었던 것으로 느꼈다.
또한 길거리에 한국처럼 요란한 광고 간판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도로에는 교통 신호등이 아주 드물게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고, 교통신호가 있는 곳에서는 인도와 차도 모두에 카운트다운 방식의 신호등을 설치한 곳이 이색 적이다. 우리는 인도 신호등에만 카운트다운 방식을 채택한 것을 나는 불만을 가졌었는데 러시아에서 바로 내가 바라던 방식을 볼 수 있었다.
야경을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 가이드 크리스티나에게 길거리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젊은이의 (나베레즈나야) 거리를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어 보았다. 가이드 말이 그렇게 하려면 호텔에서 택시를 호출해서 갈 수 있다고 해서 말 한 미디도 안 통하는 어려움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곳의 밤 풍경을 볼 수 없어서 매운 섭섭했다. 나의 기대는 가이드가 시간을 내어 몇 사람 모아서 별도 비용을 쓰면서 밤풍경을 보여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다.
길거리에 사람들은 옷맵시가 단정하고 가끔 아주 깔끔하고 우아한 고상한 정장을 차림의 여인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사람이 여행 온 사람인지 현지인 인지는 확인을 할 수 없었다. 길거리에 여인들 중 청바지를 일부러 너덜너덜 해어진 바지를 입은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한국처럼 아주머니들이 빠글빠글하게 파마머리를 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이 나라에 잠시 머무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이 식당과 호텔을 제외한 화장실이 모두 유료라는 것이다. 오줌 한 번 누어도 최소 15 ~ 20루블을 지불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동전이 없기도 하지만 그런 곳에서 오줌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한 번도 이용 해 보지 않았다.
나베레즈나야 거리를 아침 일직 일정이 잡혀 우리가 도착 했을 때 그곳 이동식 화장실을 중년 부인이 열심히 청소하고 걸레로 깨끗이 닦는 장면을 보았다. 유료 화장실을 개인이 관리하고 돈을 받는 모양이다. 달리 생각하면 그러한 유료화장실이 화장실을 깨끗이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 일자리도 만들 수 있는 하나의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 장사를 하기위해 버스를 개조하여 버스 바디를 벽돌 문양으로 그려 이색적인 카페도 있었다. 한국 이라면 당연히 그 자리에는 커피 자판기가 설치되었을 것이지만 사람이 직접 차를 파는 곳이 훨씬 인간적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이 선생님과 첫날 아침일직 안개가 자욱한 호텔주변 길거리를 걸어서 산책을 해 보았다. 이곳은 아침 안개가 짙게 끼는 것이 특징으로 보인다. 아침 6시경에 거리 풍경은 한적하고 가끔씩 시내버스가 지나가고 버스 정류장에는 아침 출근을 하려는 사라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장면이 조용하고 한가롭게 느껴졌다.
우리가 하는 말로 한국인이 미인이 많은 것은 외국에서 한국은 성형 천국이라는 말을 듣고 한국 아이돌이 미인이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을 따라하고 싶은 것 때문에 한국에 미용성형 수술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 늘어나고 한국화장품이 좋아서 미인이 많다고 하여 그 화장품이 세계적인 인기 상품이 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체형 상 러시아 여인이 나는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한국을 포함하는 동양계는 거의가 나무젓가락처럼 일자형이지만 러시아인은 가슴과 엉덩이가 크고 코는 날카롭기로 프랑스인 과 같고 얼굴이 작은 것이 전형적인 백인계로 내가 볼 때는 한국여인보다 더 미인으로 보였다.
마지막 날 저녁 어렵게 왔는데 룸메이트 끼라도 보드카를 한 병 사서 취해 볼까하여 가까운 마트에 갔다. 자그마한 마트에는 아주머니 한 분이 근무한고 입구 쪽에는 남자 한 분이 의자에 있는 것이 분위기가 손님 같지는 않아 보였다. 진열장은 고가 상품인 진열된 곳으로는 고객이 직접 상품을 고를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고 자질구레한 값 산 상품은 직접 고를 수 있게 진열 되어 있었다.
밖에서 진열장을 들여다보고 손짓을 하면 보드카라고 하고 말을 하니 그 말은 알아듣지만 더 이상 어떤 말도 통할 수가 없다. 호텔 옆 마트라면 간단한 인사정도는 고객을 위해 할 수도 잇을 법한 것이지만 이 곳 역시 아주 사무적인 자세이다. 아직은 자본주의 시장경재 체제가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그냥 추측 할 뿐이다.
말이 안 통해서 다시 보드카라고 말 하니 진열된 몇 종의 보드카 중에서 어떤 납작한 병을 들어 보이는 것 고개를 끄덕이며 한 병을 겨우 살 수 있었다. 과자 한 종류를 집어서 대금을 지불하고 호텔방에서 우리는 호텔 창밖을 내다보면서 보드카를 마셨는데 그 술 맛은 첫 날 킹-크랩을 먹던 날 식당에서 제공한 둥글고 긴병에 담긴 것보다 월신 술맛이 좋았다.
우리가 머물렀던 호텔 이름이 Astoria Hotel 이고 호텔 방에 TV는 채널은 많지만 러시아어가 아닌 어떤 언의 방송도 없었다. 영어로 방송이 된다 해도 시원스럽게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지나치게 국수주의적인 사고를 가진 나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어느 나라이든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여 국가 이익을 꾀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지만 러시아는 달랐다는 생각이다.
우리 러시아 횡단 철도(TSR)를 블라디보스토크 역에서 우골라야 역까지 열차로 이동하 러시아 열차의 승차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외관 보기에 비해 주행은 정숙하고 객실 안은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좌우 3인석으로 우리의 열차보다 객실 폭이 더 넓은 것으로 보인다.
4호 열차를 탔는데 한국과 중국에서 온 여행객들과 지역 주민 특히 노인이 시장나들이 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로 열차는 만원이고 내가 앉아서 가다가 어떤 시장 짐을 든 할머니에게 내 자리를 양보하고 서서 가는 양보의 정신을 보여 주었다.
우골라야 역에서 거기까지 쫓아온 우리 버스를 타고 또 다시 2시간 가까이 이동을 하는데 버스의 속도계는 90 Km를 넘지 않았다. 크리스티나에게 물어보니 여기 관광버스는 속도제한을 90 Km로 하드웨어적인 제한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더 이상 속도를 낼 수 없게 된 기계적인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2시간을 달리는 동안 차창 밖 풍경은 온통 푸른 낙엽수로 숲을 이루고 거의 모든 지역이 지평선에 가까운 지형이었다. 한 숨도 졸지 않고 전 구간을 보면서 갔지만 한 그루의 소나뭇과 수종을 볼 수 없었다. 일본이라면 주로 편백나무가, 한국이라면 주로 소나무 종류가 숲을 이루고 있는데 너무 큰 차이가 나는 자연 환경이다.
길 가에는 거의 마을이 없는데 그럼에도 가끔 길가에 노점상이 있고 스쳐지나가는 장면에서 수박을 파는 곳과 알 수 없는 상품을 간이 진열한 장변을 볼 수 있었다. 인간이 사는 곳 어디이든 삶의 노력은 있게 마련이다. 도로변에는 유료 화장실이 없는 관계로 우리는 중간에 어쩔 수 없이 노상방료를 하기도 했었다.
우리가 가는 목적지는 고려인이 약 1만 명이 살고 있다는 우수리스크이다. 가장 큰 목적지는 수이푼 강가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 유허비가 있는 곳과 발해 절터 성터가 있다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터를 알 수는 없었고 그곳은 너무나 광활한 평야로 끝없이 이어지는 푸른 초원 구릉지는 바람의 언덕이었다.
내 카메라에 잡힌 영상에는 멀리 해자(垓子/垓字)로 이용 됐다는 솔벤 강인지는 모르지만 강물도 보인다. 이상설 선생 유허비가 있는 장소에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소나무가 둘레에 심겨 자라고 있었다. 바로 옆 수이푼강에는 마치 금방 소나기가 내린 강물처럼 짙은 황톳물이 흐르고 강가에는 이름 모를 수목이 욱어져 있었다.
고려인 이주 140주년 기념관 - 역사박물관을 방문하여 수난의 역사를 담은 동영상을 관람하고 전시된 기록 사진등과 현 그곳에서 발행하는 고려신문을 볼 수 있었다.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제각기 작지만 약간의 헌금을 놓고 방명록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흔적을 남기고 오게 된다. 이곳에는 최재형 선생 최후거주지라는 집이 관리가 되지 않은 상태로 있어 좀 보기가 좋지 않았다.
사실 나는 우리 역사적 사실을 잘 모르고 있어 여행 전에는 위에 언급한 2분을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이 나라의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잘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시 중심지역에 있는 혁명광장, 영원의 불꽃이 있는 2차 대전 참전 희생자 이름이 새겨진 비, 잠수함 박물관 등 시내에 가까이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약간 비사실적인 용사들 조각에는 당시에도 여군이 한께 조각되어 있었다.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독수리 전망대에는 전 세계에 유행하는 열쇠 매달기는 이곳도 똑같다. 파리 센 강변에서 시작이 됐는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우리 동네 못가에도 여지없이 열쇠는 매달리고 있다.
하바롭스크에 있는 친구 올가 씨는 이곳을 “Golden horn bay"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다녀온 유적지를 ”famous fourierist place"라고 표현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80% 에어컨은 LG 제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길거리에 보이는 승용차의 80%는 어림짐작으로 일본 자동차이다.
내가 직접 보지는 못 했지만 버스는 한국산 중고차를 많이 사용 한다고 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승용차는 우측 운전석이라 해도 큰 불편없이 운전이 가능하지만 버스는 우측 핸들 사용하면 승객 승하차가 좌측으로 된 것을 사용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트에는 한국산 라면이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보다 좀 더 추운 지역이기 때문에 느끼한 맛 보다 매운 맛 한국 라면이 더 좋아할 것으로 생각된다. 식품코너에는 우리처럼 생고기를 진열한 것을 볼 수 없고 대부분의 육류가 훈제 형으로 가공된 육류가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도 생고기 보다 가공된 육류를 좋아하는 식성으로 바뀐다면 육류의 출하조절이 되어 가격 변동이 적어 생산자와 소비자가 더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너무 짧은 기간이고 제한적인 곳만을 본 탓이라 아직도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여행에서 역시 크루즈 선을 이용한 여행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것이 가장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특히 대륙을 패기 하나로 뭉쳐 도전하는 젊은이들과 귀국하는 동안 배 안에서 만난 말도 안 통하지만 함께한 즐거웠던 시간 사람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나는 해외여행에서 우리와 다른 것을 느끼고 더 좋은 것들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지만 막상 돌아와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잛은 체험으로 러시아 전체를 평가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무엇보다 그들은 정해진 법을 잘 지킴으로 그 넓은 나라가 통치가 잘 된다는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여행은 우리와 같은 것을 확인도 하고 다른 것을 배우기도 하여 여행은 힘들지만 또한 즐거움도 크다.
2016년 3월 16일 수요일
갑자기 메일 발송 100% 실패가 된 경험
지난 연말 12/29부터 갑자기 전체 메일이 “[발송실패 안내] Returned mail: see transcript for details” 메지와 함께 모든 메일이 발송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객 센터에 관련 내용을 연락하였지만 받는사람 주소, 보낸사람 주소, 보낸사람 IP, 보낸시간, 되돌아온 시간 등 여러 정보를 요청했는데 복잡하게 할 것 없이 메일 PW를 줄 테니 당신들이 내 직접 로그인해서 내용을 확인 하라고 했더니 그렇게는 못한다고 대답하여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2015년 12/29일부터 2016년 1/4일 까지 약 1주일간 정상적으로 매일을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네이버, 다음, 구글 계정을 이용하여 일부 메일은 보냈지만 메일 사고로 인해 많은 활동이 위축되었던 경험을 알려 드리고, 따라서 그 원인에 대한 고객 센터에서 보내온 처리 내용을 알림으로 다른 분들이 이런 경우를 대처하는데 도움이 될까하여 그간의 경과를 공개합니다.
개인적으로 국내 여러 중요 사이트에 계정을 시작 때부터 개설하여 유지하던 터라 급할 때는 옮겨가면서 사용을 할 수는 있지만 주소록이 업데이트 되지 않은 경우 그것을 옮겨야 하는 불편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메일 기능이 네이트가 내가 사용 하가에 좋아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음, 네이버, 네이트 등은 각각 장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 중에서 네이트가 기능면에서 편리하다는 생각에 네이트 메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그 문제의 내용을 캡처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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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8일 목요일
폭발직전 노트북 배터리 제거
내 아들이 6년 전에 삼보-노트북을 주어 몇 년 동안 보조 컴퓨터로 유익하게 사용을 했었다. 그런데 6개월 전 즈음부터 배터리가 갑자기 기능이 완전히 정지 되었지만 제거 하지 않은 상태 그대로 사용을 해 왔다. 교환을 할 생각을 했지만 비용 때문에 차일피일 새로운 배터리를 구매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근래 키보드 중앙에서 우측으로 치우친 부분이 이상하게 평평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나는 그것이 내 눈이 착시(錯視) 현상으로 부풀어 보인다고 생각 했다. 그런 날을 2주일 즈음 되어 점차 그 정도가 심하여 전원을 끄고 자세히 살펴보니 실재로 키보드가 실재(實在)로 휘어져 있음을 알게 됐다. 확인 차 뒤 뚜껑을 열려고 하니 내부 팽창 압력으로 커버를 힘들게 제거 하고 보니 배터리가 부풀어 있었음을 알게 됐다. 나는 그런 상황도 모른 채 오랜 시간동안 내 눈만 의심을 한 채 사용을 했던 것이다. 제거한 배터리를 방안에 그대로 놓아두고 하루를 지내고 생각하니 너무 아찔한 언제 폭발을 할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있었음을 깨닫게 됐다. 갑자기 폭발이 일어날까 걱정이 되어 당분간 그 문제의 배터리를 베란다 시멘트 바닥위에 놓아두어 혹 폭발을 하드래도 2차적인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하였다. 좀 오래전 리튬이온 전지의 폭발 장면을 본 기억 되어 내가 무감각하게 지내온 것을 자책을 하였다. 다행히 폭발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제거를 한 것은 잘 한 일이지만 어리석게도 내 눈에 이상 현상이 있어 키보드가 휘어져 본인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한 나의 무지함과 근거 없는 가정으로 오인 한 것을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자료 화면에서 폭발의 원인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가정해보면: 1-아직 전하(電荷)가 충전된 배터리가 내부 쇼트를 일으켰을 때 접촉부가 열을 내면서 열 + 화학 반응으로 폭발을, 2-방전이 된 상태의 배터리를 충전을 할 때는 전원 어댑터는 전류 제한은 하지만 화학적 반응으로 반응열로 인해 내부 발생압력의 상승작용으로 폭발이 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해 보았다. 날마다 아침 첫 뉴스를 들을 때 마다 자동차 사고와 화재사건이 몇 건씩 발생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평소 안전에 대하여 얼마나 무관심과 무감각한 생활을 했는지를 알게 된다. 모든 사람들은 사건 사고를 보면서도 남의 일로만 생각하고 자기 주변은 살펴보지 않는 것을 고처야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해 본다. Exploding Laptop - Lithium Ion Battery (Extended Version) |
2015년 8월 10일 월요일
옥상에서 열대야 해결
나의 열대야: 금년에는 지난 여러 해 보다 더 덮게 느껴졌다. 나는 냉방 장치를 이용하지 않은 생활을 한지가 오래이다. 그렇게 된 동기와 이유는 소득도 없으면서 누릴 걸 다 누리고 산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환경을 내 몸에 맞춤으로 내 몸의 환경 적응력이 떨어짐으로 부득이 어려운 환경이 처했을 때를 적응이 힘들 것 같은 마음 때문이다.
물론 선풍기는 사용하고 있다. 지난 일주일은 방송에 폭염 주의보와 열대야에 많은 국민들이 힘들어한다는 보도를 많이 했다.
나는 지난 밤 까지 총 10여일을 2층 옥상에서 열대야를 해결 했다. 방안에는 선풍기 2대를 돌려 우선은 피부에 닿는 바람결에 기화되는 땀과 뺏기는 체열 때문에 약간 시원함을 느끼기는 하지만 밤새 최고속도로 돌리는 선풍기 바람은 그 바람에 질식 할 수도 있다.
나는 콘크리트 슬라브 된 옥상에 아직도 낮 동안 달구어진 열기를 느끼면서 서서 주변을 둘러 보는 동안 간간히 흔들어주는 미풍에 시원함을 느끼게 됐다.
이 체험을 하기 전에는 온종일 달구어진 슬라브가 밤새 계속 뜨거울 것으로 생각 했는데 오후 9시가 되면 거의 미열만 남아 얇은 야외용 은박지 자리만 까고 누워도 괜찮은 느낌이다.
어제 20메타 길이로 준비한 전원 확장 코드를 연결하여 노트북을 연결하고 윈도우가 부팅되고 나니 기대이상으로 와이파이 레벨이 거의 풀로 뜬다. 인터넷은 와이파이로 완벽히 준비가 되어 심심하지 않아도 된다. 전자제어 계통에 일을 하면서도 통신수단의 다양성과 그 능력이 이렇게까지 발전 되리라는 것을 예상 하지 못 했다.
이-메일을 정리 하면서 2시간을 보내는 동안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은 은박지 자락을 들썩 거려 작업을 방해 받아도 점차 시원해오는 것으로 상쇄하고도 남는다. 노트북을 켜 놓은 채로 잠이 들었는데 추워서 깨어 보니 1시 30분인데 너무 써늘하여 긴소매 긴 잠옷을 찾아 입고 다시 잠이 들었는데 추워서 깨어보나 새벽 4시경이다. 하는 수 없이 후퇴하여 방에 오니 아직도 여기는 후끈거리는 열대야 그대로이다.
이런 방법을 개발하여 나는 하룻밤 사이에 2차례나 잠을 깨야 하지만 그래도 그 자연의 시원한 밤-바람은 매일 밤 나를 옥상으로 오게 만들었다. 이런 생활을 한지가 10일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몸 간수를 잘못하여 팔과 다리 허벅지에 모기가 흡혈을 해간 흔적 빽빽하다. 이제 나는 한 낮에 열기가 열대야 보다 더 걱정이다.
우리 집 2층 현관 음지에서 센시리온 센서를 사용하고 지그비로 송/수신하는 무선 모니터링 온도는 어제(2015/08/06)오후 온도가 37.7도에 습도가 44.3 퍼센트를 기록하고 있다. 팬티 하나만 입고도 낮에는 더워서 2번을 샤워를 해야 하는 더위이다.
혹시 저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분들은 옥상을 이용하여 열대야를 해결 해 보시면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위치에 따라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여름밤의 별과 흘러가는 달을 보면서 시원한 밤바람에 자는 잠은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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