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neField: 뼛조각 하나라도 가족 품에…

2014년 11월 21일 금요일

뼛조각 하나라도 가족 품에…

오늘 아침 인터넷에서 메일을 보다가 얼른 눈에 들어오는 기사가 있어 다짜고짜 읽다가 한마디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뼛조각 하나라도 가족 품에… 세월호 인양 대책 서둘러달라”,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등 114개 시민사회단체는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실종자들을 끝까지 찾아내고 침몰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세월호 인양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
위의 내용이 있는 곳

줄잡아 20여 년 전만 해도 중병을 치료 하다가 환자가 돌아가실 상황이 되면 병원에서는 “이제 집으로 모시지요”라고 하면서 객사를 하지 않게 하도록 그렇게 권유 하곤 했다. 그런 우리의 죽음에 대한 풍속은 아파트 생활이 보편화 되면서 갑자기 변화하여 지금은 돌아가실 즘이면 여지없이 밖으로 끌어내어 객사를 시키는 것이 생의 마지막 가는 방법이 표준화가 되어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산에는 뭍일 곳이 부족하여 화장을 하도록 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지금은 뼛가루마저 차지 할 자리가 부족하여 수목 장을 권유하여 나무뿌리에 묻어 나무의 거름이 되도록 권장하고 그 나무가 성장하면 베어 버리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실정이다. 서구 어는 나라는 가족의 시신을 고열/고압으로 농축하여 인조 다아몬드 (큐빅)같은 보석을 만들어 몸이 지니고 다닐 수 있게 해 주는 곳도 있다는 말을 했다. 그것이 소용이 있을 까 모르겠다.

그런데 세월호 침몰 사고로 희생된 10명의 유해 인양에 엄청난 비용에 대한 고려는 없이 끝까지 뼛조각 하나까지 가족 품에 안기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에 참으로 불공평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천안함 폭침으로 희생당한 46용사 중에도 찾지 못한 유해가 있지만 가족은 너그럽게 인정하였지만 유독 여행 가다가 수장된 세월호 가족은 정부와 전 국민의 애도하는 마음을 볼모로 끝까지 찾아내라고 버티고 있는 것이 이 사의 찌그러진 사회윤리 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좀 심하게 말 하면 온통 죽일 놈 만들지만 나도 표현의 권리가 있지 않은가? 사고이후 그 긴 세월 외국인들이 수없이 방문하는 서울 한 복판 청와대 앞거리를 천막을 치고 가짜단식까지 하면서 로마교황 길 앞에서 고함치며 구걸 하듯 위로받는 갖가지 행태를 많은 국민은 참고 보아 왔다. 정치인은 아직도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놈이 있는 듯 한데 차라리 그의 집에 빈소를 차려 아침저녁으로 3년상 날 때 까지 식상 (옛날에 우리 풍습) 올리는 것이 더 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 그들이 노란 리본을 다는 것을 유가지족이 보지 않는다면 그래도 그 긴 세월을 상주노릇 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휴전이 되고 우리 가족은 휴전이 됐으니 곧 돌아오실 거사고 믿었던 생각은 아버지 지인의 증언으로 그 희망을 잃었다.나는 아버지가 육이오에 포항전투에서 희생되어 돌아오지 못해서 자식으로서 항상 마음 한 구석에 불효 하는 자식이 된 것에 서글픔이 남아있었지만 바로 옆에서 당시 포격에 돌아가신 상황을 증언 해 주셨던 고향분이 가르쳐 준 곳에서 휴전이 끝나고 찾아 그곳에 갔지만 어른들은 우거진 초목 사이에서 아무 것도 찾아 낼 수 없었다고 했다.

유해마저 돌아오지 못한 슬픔은 날이 갈수록 퇴색되고, 지금은 6.25 전사자 정부는 유해 발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채혈을 하여 DNA를 확보하여 가족의 품에 유해를 돌려주는 정부의 노력은 고맙지만 나는 이미 포기한 상태이다. 그 이유는 대구 경북 근교에서 가장 치열했던 곳이 다부동 낙동강 등이 있지만 내개는 포항 뒷산에 관심이 지만 정부가 거기까지 유해 발굴을 할 수가 없을 것이 뻔한 일이다. 그리고 너무나 변한 그곳에서 내 아버지의 유해를 발굴한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다.

이번 해난 사고로 목숨 잃은 분들이 팽목항에 마음 박혀 있듯이 나는 포항 뒷산 산화된 아버지를 생각하고 그곳에만 집중 된 것과 같은 말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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