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2015년 1월 13일 모임을 낮 시내 진골목에서 모임을 한 후 일행 5명이 CGV 영화관엘 갔다. 요즘 진보진영과 보수진영 사이에 말썽이 많다는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 하기위해 간 것이다. 아마 내가 영화를 마지막 본 것은 30년이 넘지 싶다.
요즘 영화는 상영방법도 옛날과는 매우 다르다. 옛날에는 필름으로 된 영화였지만 지금은 디지털 시대인 만큼 영사기 또한 컴퓨터에서 동영상을 보듯 하는 방법으로 하는 모양이다. 옛날에는 극장에 관련해서 지방 영화배급소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을 했던 관계로 잘 알고이었지만 지금 영사 방법으로 상영하는 영화를 내 생애 처음 대하는 기회가 됐다.
영화의 주인공 윤덕수와 영자 두 사람이 살아온 내용이었다.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를 평론한 매스컴의 말들과 진중권이란 사람이 평가한 영화에 대한 평가를 생각하며 또 영화 기술적인 면과 이야기 내용에 대한 종합적인 것을 평가해본다는 마음으로 관람을 하게 되었다.
우선 영사 기술적인 면에서 옛날에 보았던 외국영화 시네마스코프 대형스크린에 비친 영화에 비해서 웅장한 것을 느끼지는 못했다. 필름영화에서처럼 화면에 어떤 흠결을 발견 할 수 없는 것이 필름 돌아가는 소리 없이 조용한 것이 매우 큰 장점으로 생각됐다.
옛날 필름영화 영사기는 고-휘도를 얻기 위해 카본전극을 사용한 아크 방전으로 광원을 사용했기 때문에 화면이 깜빡임 있을 수 있지만 그런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지금의 영사실을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내가 더 이상 알 수는 없다.
옛날에는 영화필름을 프린트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고 필름을 배포 할 때 많은 수량을 제작하지 않다보니 영화가 보급되면 개봉관이 하나 정해지면 인기에 따라 상영일수가 정해 졌고, 1개의 도시에는 1프리트만 제공되어 상영관은 당연히 한밖에 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경북의 경우 대구 시내 개봉관에서 기간이 끝나면 그 필름은 다른 지방도시 몇 곳에 갔다가 돌아오면 그때부터 2류 극장에서 상영을 하게 된다. 2류 극장 상영부터는 2개 극장 동시상영을 하게 된다. 한 개의 필름으로 A/B 극장이 동시상영을 하기위해서는 두 극장사이 상영 시간차를 두는 방법으로 가능 할 수 있었다. 그 때는 두-극장 사이에 필름을 나르는 사람도 하나의 직업으로 정착이 되어 있었다.
그런 반면에 지금은 영화를 같은 시내에서 여러 영화관에서 동시상영을 하는 것을 확인 했다. 이것이 옛날과 크게 다른 것 같았다. 그런 결과로 짧은 시간에 많은 스크린을 할당 할 수 있음으로 단기간에 동원 관객이 수백만을 넘어 천 수백만 명을 동원 할 수 있어 잘 만들어진 영화는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릴 수 있는 것 같았다.
옛날에는 영화 필름에 투자한 투자자와 극장을 가진 쪽이 수익을 5대5 세금을 각각 내는 방법과 6대4의 극장 측이 세금을 전부 부담하는 방법을 택하여 이익을 분배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방법으로 이익을 분배 하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내가 젊은 시절에는 남의 억울함이나 어려운 내용을 보면 목이 메이고 가슴에 통증을 느끼면서도 눈물을 흘린 적은 별로 없었다. 평소 그렇게 해왔던 나는 이번 오랜만에 보는 영화가 손수건을 들게 했다. 6.25때 포항으로 후퇴하던 아군은 아버지 팔에 안겨 있던 나를 내려놓고는 아군 2사람이 아버지를 보국대로 대려 가면서 나를 들판에 혼자 두고 떠났고 그 후 다시는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그런 나의 배경에서 흥남부두 철수 영화장면은 나를 울리고 말았다. 나도 못 사는 시골사람으로서 육군 제대 말년에 월남전에 지원을 하려 했지만 자격이 되지 않아 갈 수 없었다. 서독 광부로 가는 것 또한 너무 고학력자들이 몰리고 해서 시골 촌놈이 지원하기에는 역부족 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 밖에도 광산에서 죽음 직전에 구출 되어 사랑하는 여인이 손을 잡고 실려 가는 장면은 연출 된 장면이지만 가슴 뭉클했고 특히 KBS 이산가족 찾기에서는 극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면은 목이매이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다큐멘터리 영상이라 할지라도 비록 사진이든 영화이든 촬영 주체가 좀 더 극적인 장면을 담아 보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부 진보자라 말하는 자들이 이 영화에 시비를 하는 모양인데 이 영화는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를 진중권은“과거를 미화한 정치영화라고 비판하고 다른 쪽은 아버지 세대를 그린 가족영화 일뿐이라고”평가 했다고 한다.
이런 자가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친다고 하니 참으로 한심하고 분노를 할 수 밖에 없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윤덕수라는 사람과 영자라는 인물을 내새워 흘러간 우리의 어려웠던 시대를 되돌아보고 나라가 어떻게 그 어려운 시기를 극복 했는지를 대변해주는 실화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장면의 구성 기술적인 면 또한 훌륭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예를 들면 흥남부두 철수 장면과 KBS 이산가족 찾기 장면에서 분명히 과거의 기록물을 이용하여 합성 했을 수 있음에도 어색함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 영화는 다른 영화와 달리 위에 언급한 2 장면은 과거 자료 장면을 이용하지 않고 모두 영화촬영 세트 만들고 연출하고 CG로 하기에는 힘들었을 것 같은 생각에 매우 훌륭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다른 영화도 감상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굳세어라 금순아 가사
1.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를 가고 길을 잃고 헤매이더나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이후 나홀로 왔다
2.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진다
영도 다리 난간위에 초생달만 외로히 떴네
3. 철의 장막 모진설움 바꿔 살아간들
천지간에 너와 난데 변함이 있으랴
금순아 굳세어라 남북통일 그날이 되면
손을 잡고 울어보자 얼싸안고 춤도 추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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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28일 수요일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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