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아직도 왜 이렇게 폐허가 됐는지를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의 9원 3일 전승절 행사에 참석 하는 것 때문에 “日산케이 신문 칼럼, 박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하여 우리 한국인의 감정을 매우 불쾌하게 만든 기사가 있었다. 참으로 괘씸한 왜놈(Jap)이라 말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와 일본 미국과 중국을 한 번 생각해 보면 흔히 말해왔던 세상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을 실감 할 수 있는 지금의 관계라 생각 된다.
우리는 일제 강점기(日帝强占期, 1910년 8월 29일 ~ 1945년 8월 15일)를 동안 많은 감정이 쌓일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고, 일본은 태평양 전쟁(1941년 12월 7일) 일으켜 미국과 전쟁으로 진주만 공격을 하여 미국 전함 애리조나 호를 침몰 시켜 미국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고, 일본은 1937년 7월 7일 일본의 중국 대륙 침략으로 시작되어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중국을 침공 했고, 일본은 1904년 2월 8일에 발발하여 1905년 러시아와 전쟁을 하였고, 1950년 6.25에 북한이 자행한 남침 시에 중국은 북한을 도와 유엔군과 한국을 상대로 싸웠던 기록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역사이다.
중국이 북한 김일성의 남침에 군대를 파견하여 우리와 싸웠던 것만 제외 한다면 2차 대전 1939년 9월 1일부터 1945년 9월 2일까지 모두가 일본으로부터 침약을 당한 피해국 들이다. 우리 한국이나 중국이나 미국이나 모두가 일본과의 전쟁을 끝 낼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사용한 2방의 원폭으로 불세례 받은 일본으로부터 항복을 받은 것 때문이다.
그렇다면 날자는 다르지만 중국의 전승절과 우리의 광복절과 태평양 전쟁의 종결은 미국에 의한 광복과 전승 절이 되는 만큼 미국도 우리도 중국에 그리 기분이 언짢을 이유는 없지만 지금 중국의 지나친 힘을 과시하는 것 때문에 미국의 입장에서 속이 편할 리는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일본과 미국의 관계는 지금 가까운 사이 지만 미국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후유증이 많은 무기를 사용하여 일본으로부터 항복을 받은 만큼 일본을 도와준 것이 가까운 사이로 됐고, 특히나 한국전 때 일본은 한국 때문 미국으로부터 많은 경제적 해택으로 다시 살아남으로 적국이 형님 국으로 바뀐 역사를 가진 자들이 함부로 입을 놀려 데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 됐다.
만약 6.25만 아니었다면 우리는 중국과는 부정 할 수 없는 고대 역사로부터. 근세의 일본의 만행에 투쟁한 항일투쟁의 장소를 제공받은 것과 임시정부 청사까지 잘 보존 해준 중국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 된다. 만약에 중국이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의 중국내의 활동을 막았다면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발붙이고 항일 독립 운동을 했겠는가를 미국도 양해를 해야 할 일이라 본다.
하지만 미국은 6.25에 한국의 공산화를 막는다는 것 때문에 4만이 넘는 고귀한 젊은 목숨을 거지같은 생소한 나라에 와서 잃은 것을 대한민국 국민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중국 또한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고 한미동맹의 장애가 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본은 아직도 왜 중국의 전승절이 생겼는지를 모르는 인간들이 나라를 맡아 운영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그 전만 해도 비교적 양심을 가진 정권이 있었는데 아베라는 자가 총리직을 수행하면서부터 옛 강도질한 것도 잊은 채 한 때 가까웠던 우리를 더 멀리 밀어내는 행위를 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 최강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가까이하는 나라도 변화 된 것이다. 이것이 일본이 느끼는 가장 기분 나쁜 약 오르는 일이 될 것이다. 일본인의 정직함은 세계의 본보기가 되고 칭찬 받을 만하다. 하지만 현재의 방법으로 국가를 경연한다면 일본은 쇠망의 길에 더 빨리 들어서게 될 것이다.
상해 임시정부청사: http://sseeman.egloos.com/957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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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17일 목요일
중국이 6.25에 김일성만 도와주지 않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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