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대한민국 광복70주년이다. 어떤 숫자가 특별한 의미를 갖지는 않겠지만 사람들은 십단위수의 오버플로가 발생하는 수에 뭔가 큰 의미를 부여 하여 10년이란 긴 시간에 덤덤해진 상태에 일신(Refresh) 하려 한다.
내가 살아온 대한민국을 되돌아본다면: 참으로 아찔한 국운이 갈린 순간이 많았던 것을 기억하게 된다. 광복 70년을 맞아 세계 속에 한국을 자평을 한다면 해방 당시에 세계최빈국에서 현재는 경제력 10위권에다 민주주의까지 정착시킨 나라로 이제는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성장한 세계 유일의 나라로 변신했다.
“만약”이라는 단어와 결부 시켜 회상 해 본다면: 만약 미국이 일본에 원폭 투하로 일본이 항복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오늘이 있었을까? 만약 이승만 대통령이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백범 김구선생님 주장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을 하지 않았다면 (북한이 도발한 6.25 전쟁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6.25에 내 고향 포항까지 밀렸던 우리 마을 도 접령 된 전황은 수일 내 완전 공산화 통일이 되어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으로 통일 직전에 있었다.
만약 그 때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이 하지 않았다면 (미국을 비롯한 UN 참전 16개국 + 의료지원5개국의 지원)? 지금 대한민국이 있었을까? 만약 박정희가 자유를 누리면서 부패의 길로 빠져 들었던 시대에 1961년 5.16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었을까? 만약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 발전을 시키지 못 했다면 오늘과 같은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을까?
광복 70년의 아침에 내 생각으로는 자유대한민국이 처음 유엔에 등록도 되지 않은 대한민국이 국가 출범이 지방자치제를 실행하는 지나치게 자유를 가진 민주주의 국가로 출발한 것이 지나친 자유와 선거 부정으로 부패의 나라로 된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에 시골 면에서 내 친구 아버지가 면의원에 당선 된 것을 기억하고, 당시에는 면의원, 도의원, (구의원?) 시의원, 국회의원이 있어 선거 때가 되면 가난한 국민들은 작은 고무신 한 켤레에도 마음을 뺐기는 혼란 했던 기억이 있다.
대한민국의 경재 발전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말 한 그 유명한 한국적 민주주의에 바탕 하여 강력히 시행한 계획과 실천을 군인이 작전을 하듯이 목표지향적 추진으로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가정의례준칙 만들고 교육헌장을 만들어 국가 개조를 한 것이 중요한 요소가 되었던 것을 부정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각종 의례가 우리의 본래의 것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과거우리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잊어버린 그 전통적 사고와 생활은 일본의 지배하에서도 버리지 않고 이어진 전통이 주었던 개인 경재에 무거운 짐이었던 것이 전통 관혼상제였다. 그 전통의 틀을 국가가 과감히 끊어 준 것 또한 개인과 국가 발전에 미친 큰 요소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미래의 목표가 있다. 목표설정만 잘 한다고 목적을 이룰 수 없다. 올바른 목표설정에 강력한 계획에 따른 추진과 실행이 있을 때만 목표에 다다를 수가 있다. 우리의 새마을 운동이 여러 나라에 전파 되었지만 아직 그 나라들의 성공은 알려지지 않는 것이 바로 그 나라가 가진 전통적 비합리적 요소를 제거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주주의도 사회주의도 경제력 없이는 지킬 수 없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성공한 민주화의 밑천은 대한민국의 경제력이 만들어 냈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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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5일 토요일
대한민국 민주화 성공은 경제력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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