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선박의 운임은 군산 --> 선유도:11000, 선유도-->군산:9800 왜 그런지 동일한 배를 탔는데 차이가 난다. 보시다시피 선수 갑판에는 매우 낡은 설비가 불안스럽다. 선수가 약간 흔들릴 때 마다 어디선가 덜커덩 하는 소리가 난다. 엔진소리가 너무 커서 대화가 되지 않는다. 왕복하는 동안 내내 세월호를 생각하게 됐다.
이곳 선유도 부근 바다에도 많은 바다농장이 보인다. 남해바다에 비해서는 적은 것 같다. 이제는 일반인들이 바다, 산, 하늘, 어디를 가든지 주인 있는 영역에서 행동이 자유롭지 않다. 선유도에서 군산항으로 오는 바다에는 좌측으로 새만금 방조제 같은 것이 보여 승무원에게 물어 봤더니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라고 했다.
너무 낡은 배를 운행을 하게하는 것이 당국에 불만이다. 운임이 11000 + 9800, 운행 시간은 편도 1:30분이 소요 된다. 몇 해 전에 부산 <--> 대마도, 부산 <--> 후쿠오카, 포항 <--> 울릉, 사천 <--> 사량도, 가오치 <--> 사량도, 그 이외에 욕지도 등을 가본 경험으로 볼 때 군산 선유도가 선박 상태가 가장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세월호 사고도 선사의 선박상태가 관리가 관리태만으로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우리가 이용한 배 말고도 여러 선사가 있고 그 배들은 엔진 소리부터 다르고 외관도 깨끗한 것을 같았다. 선박 안전은 사업주체와 관리 하는 기관아 모두 정확히 해야만 안전을 확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승객들이 갈 때는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주면서 법석을 떨면서 사진도 찍으면서 많은 호기심을 보였지만 돌아오는 승객들은 모두가 주변의 보이는 것들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렇든 사람들은 쉽게 주변 상황에 동화된다. 그와 같이 관련 일에 종사하는 모두가 매일하는 반복되는 상황에 무감각하여 안전에 대한 생각도 둔화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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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7일 수요일
선유도 망주봉 (2015/10/25)
군산 출발 10:30 선유도 도착 12:10 선착장에 도착하여 우리 참사랑 산악회 집행부는 3시 반까지 도착지점에 집결할 것을 당부하고 해산하였다. 산행이 그렇듯이 끼리끼리 행동하는 것 때문에 삼삼오오 그룹이 되어 흩어졌다.
선유도에서는 산행이라기보다는 즐길 수 있는 것을 개별 그룹이 선택하여 주어진 시간 내에 즐겨야 했다. 가능한 종목은: 관광용 승합차로 일주하기, 자전거를 임대하여 스스로 원하는 곳 돌아보기, 적당한 맛집을 찾아 먹거리 즐기기, 집-라인 (Zip Line)타기, 적당한 산을 찾아 등산하기, 특별히 생긴 104.5메터 망주봉 등산 등 골라잡아 즐길 수 있다.
사전 정보가 없었든 탓으로 짧은 시간동안 여러 가지를 할 수 없는 관계로 나와 회원 한사람과 같이 오르기 힘든 돌산 망주봉 등산을 선택했다. 미리 알지 못하고 갔더니 안전사고 발생으로 등산금지 하는 군산경찰서장의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되돌아가면 선유도에서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좀목이 하나도 없을 것 같아 우리는 강행 하기로 했다.
우리일행은 우선 망주봉을 정복하고 다음 돌아오는 길에 집-라인을 탈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부족하여 한가지는 포기를 했어야만 했다. 집-라인은 군에서 극기훈련에 사용되는 2지점 사이를 외줄로 된 와이어로프를 경사지게 설치하여 박쥐처럼 매달려 고속으로 스라이딩하는 최근에 유행 하는 놀이이다.
이글을 읽는 분들은 사전에 줄길거리를 비용과 시간을 미리 생각하여 가는 것을 권장하고 싶습니다. 참고로 집-라인은 2만원, 자전거 1일 만원 회값은 육지에서 비용에 비해 싸지 않으므로 충분히 준비해야만 할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선유도 여핼은 1박2일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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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시 선유도 가는 길(2015/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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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5 난생처음 선유도 (전북 군산시)등산 제안에 반갑게 동참을 했다. 우선 선유도라는 그 이름이 좋다. 그리고 가는 길이 전북 전주시를 경유해서 군산을 가게 됨으로 비록 자세히 볼 수는 없지만 내가 태어난 곳 다음으로 군생활을 그곳 (예비35사)에서 하는 동안 격은 사람 좋고 인심 좋고 거기다 군산 방향으로 높은 산 없이 끝없이 펼쳐진 농지를 보면서 부러워했던 곳을 지나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에 집을 나서 새벽시간에 택시 만나기가 힘들므로 자전거로 대구은행본점역까지 25분을 달려 지하철을 타려고 내려갔더니 첫차 시간이 5:38이라고 안내가 나온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승차위치에 5:40 맞추어야 했다.
결국 오늘 선유도 산행을 위해 새벽 4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샤워하는 시간을 모두 합하면 20시간을 작은-산(망주봉) 하나 오르기 위해 사용 한 샘이다. 무엇이든 내가 이루기 위해서는 상응하는 시간과 비용 대가를 지불해야만 성취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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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이전 요구에 거절은 당연하다.
기술이 없는 기업이나 국가가 선진기술을 확보하는 방법은 기술제휴를 하거나 스스로 고급 인력을 채용하고 각고의 노력으로 자력으로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옳다. 이번 대통령의 미국 방문 시에 미국의 핵심 기술 이전 (移轉)을 부탁 하기위해 관계 장관 까지 대동했지만 미국은 거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기술 이전이란 말도 어폐가 있다. 이전 이라면 완전히 넘겨주는 것이고 전수 라고하면 복사와 같은 개념일 것이다. 아마도 내 추측은 핵심기술 전수가 맞을 것이다.
지금까지 무기 선진국은 신무기를 돈 주고 살려고 해도 팔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 한국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최신 전투기 핵심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지만 상대편의 입장에서 본다면 겨우 수-십대 전투기 팔아먹고 나면 한국에서 자체 생산하여 더 못 팔 것이 뻔한데 기술 이전을 쉽게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생각된다.
내가 잘 알 수는 없지만 미국은 각종 무기의 생산판매가 민간 기업에서 하지만 국외 수출 같은 반출은 국가의 통제를 받는 것이니 개발 기업의 계산과 의지와는 무관하게 정부의 통제 받을 것이다.
한국국민은 미국의 기술이전 거부에 반감이나 불쾌감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역지사지 (易地思之)해서 본다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내가 생각 할 때 미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 너무 뻔뻔하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론 조사에서 한국인의 미국 호감도가 한 때 50% (46%/2003) 이하까지 간 것을 본다면 믿음직하지 못할 것이 당연 할 것이다.
지난 대선 때 나온 문제 중에 안철수는 그들의 주-종목인 V3백신 소스를 북한에 정부 허락없이 제공 했다고 하여 고발을 당했다는 보드를 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가진 방패의 내용을 알게 함으로 북한의 창이 우리의 방패를 뚫을 것이다. 그 영향인지는 모르지만 이후 여러 차례 은행과 정부기관 등이 북한 소행으로 생각되는 해킹 예를 보았듯이 미국에서 받은 중요기술이 그렇게 북한으로 유출 되지 않다는 보장이 없을 것이다.
서방 선진국은 기술이나 중요부품이나 관련 장비가 못 믿을 국가로 유출을 동제 했었다. 내 경험을 말하자면 소기업이 국내에서 외국산 프로그램 개발 장비를 구매하려면 수백만원대의 당시(1990년대)에는 매우 고가 이었다. 산업용 MCU 프로그램 개발은 각 회사마다 일의 내용이 다르고 개발 전문 업체에 위탁개발 (아웃 소싱)로 노출을 꺼리다보니 사내에서 하는 것을 선호 했다.
우리는 사내 개발을 하기로 하면서 궁여지책으로 우리는 일본 기술잡지에서 중고 장비 판매하는 곳을 찾아내고 당시에는 인터넷이 안돼서 주로 팩스로 거래 제의와 흥정을 하고 2세트를 구매하기위해 직원을 보냈다. 그런데 하룻만에 장비를 들고 들어와야 할 직원이 COCOM에 관련된 문제로 공항에서 반출 문제가 있다고 통보를 해왔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중고장비 마저도 통제를 받는 것을 알게 왰다. “2차 세계대전 후 동서냉전에 의한 코콤(COCOM : Coordinating Committee for Export Control)으로 서구의 자유주의국가들이 전략적 물자와 기술을 공산국가에 대하여 수출규제를 실시해왔다.” 때문에 지금 다 기억은 안 나지만 필요한 증빙 서류 추가로 보내고 2일 동안 발이 묶였다가 겨우 들여 올 수 있었다.
이처럼 기술이나 관련 핵심 부품과 하찮은 중고 개발장비의 민간 기업의 거래 까지도 COMOM의 제제를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미국의 기술유출에 대한 우려를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기술로 개발을 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라고 생각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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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교과서 토론장에서 노란 리본
대한민국은 한 개인의 행동을 범죄인이 아닌 이상 어떤 행동도 국가로부터 제어되지 않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이다. 하지만 어느 나라 어느 사회이든 법 이 외에 강제성 없는 사회적 규범과 전통이 있다.
특히 관혼상제는 더욱 나라가 강제하지 않은 엄격한 암묵적 합의에 의해 시행되고 있다. 특히 우리 한국인은 상례에 관한 한 좀 특별한 사회규범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또한 세월의흐름에 따라 많이 바뀌었다.
내가 어릴때만 해도 집안 어른이 돌아가시면 3년 동안 상주로서 아침저녁 식사 전에 빈소 (殯所)에 식상(食床)을 올리고 헛-울음 이지만 곡 (哭)을 했다. 3년상을 끝내기 전에는 매년 기일(忌日)이 되면 크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었다.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면서 [시행 1969.1.16.] [대통령령 제3740호, 1969.1.16., 제정] 크게 간소화 돼서 가난해도 남의 눈(이목) 때문에 줄일 수 없던 허례허식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그 때 이후 국가 권장의식에서 더욱 변화를 해서 지금은 부모가 죽고 나면 3년 탈상이 일 년에서 49제로 이제는 장례가 끝나는 날 탈상을 하고, 화장 후 수목장(樹木葬)으로 부모나 가족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세상 이지만 이분뿐만 아니라 일부 야당 국회의원들은 아직도 언론 카메라에 버젓이 노란 리본을 달고 3년상을 채우려는 실천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누구도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제한 할수 없지만 내가 보기에 이런 특별한 행동은 일반 국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 할 것으로 본다.
그분의 가까운 주변 사람들은 아마도 자기 부모나 친족 장래 후에 어떻게 하는가를 가만히 지켜 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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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국가 이력 정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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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학계에서 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발하여 일부 대학 교수들이 집필진에 참여를 거부했다고 한다. 옛말에“ 정승도 지(자기)하기 싫으면 안 한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은 맞는 말이다.
우리는 대학 교수라고 하면 최고의 지성인으로 생각 해 왔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는 점차 그들의 권위와 존경의 대상에서 멀어져가는 느낌이다. 특히 이번 대한민국의 역사, 국사, 현대사 교과서의 잘못된 부분을 정부가 바로 잡겠다고 했는데 지들이 무슨 하느님이나 되는 듯이 거부한다는 보도를 들으면서 이들은 교수로서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교수가 되어 본적도, 역사를 전공한 적도 없지만 역사학자가 뭐 대단한 척 하는 것이 좀 꼴불견이다. 그 이유는 역사는 흘러간 세월동안 일어난 많은 일들에 대한 이력(履歷)을 정리하여 기록으로 남긴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학식으로 대우받을 만한 것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지금은 우리가 IT와 ITC 시대라고 말한다. IT는 글자 자체로는 정보를 취득하는 기술 시대를 말하는 것이고 ITC 또한 그 정보 취득 기술에 취득 정보를 서로 교환하는 통신기술을 부가했다. 이러한 기술이 일반화되기 이전 일반 국민들이 본인 주변 이외의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시대였지만 지금은 어떤 일들이 발생하면 유/무선과 광통신으로 전-세계로 순간에 전파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 교수로 제직하는 사람들이나 일반 국민이나 관심만 가진다면 크게 차이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대사에 대한 문제는 아직 몸소 체험한 국민들이 살아있고 약간의 세대차가 있다 하더라도 아나로그적으로 세월의 흐름이 연속 되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역사의 증인들이 살아 있는 남북한 관계마저도 잘못 된 것을 요즘 흔한 말로 팩트(진실)에 근거하여 교과서를 기술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잘못이 있으면 그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정부의 노력에 그들(교수)이 협조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역사는 다른 학문과 달리 있었던 국가적 일을 정확히 기록 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역사 교육의 목적은 미화 또는 비판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더 좋은 나라를 만들어 나갈 수 있게 지난날의 잘 잘못을 편견 없이 교육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역사 교과서에 잘못이 있으면 당연히 바로잡아야 한다.
범죄의 성립은 실행이 된 이후이고 실행 전에는 아닌 것처럼 미리부터 정치권과 일부 소위 역사학자라고 하는 자들이 시작도 하기 전에 “친일”, “유신”이란 단어를 앞세워 무조건적 반대 시위를 하는 것은 잘못이다. 내가 볼 때 역사학자는 IT가 발전하기 이전에는 지식이 이지만 지금은 정보일 뿐이다.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면 그게 자연 분만이든 배를 째서 낳든 간에 세상 박으로 태어난 이후 부터 공식적인 아기의 이름이 지어지고 나이를 카운트하는데 왜 정부 수립에조차 이견이 많은지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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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쇼 문자의 힘 한글의 과학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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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은 위대한 세종대왕의 애민(愛憫)의 결과로 만들어진 IT 시대에 세계 최고의 간편 문자를 가진 한국인은 그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이것은 실로 우리민족의 큰 축복으로 감사하야 할 일이다. 그러나 지금 스마트폰 시대를 누리는 세대는 우리 한글의 불편했던 지난날을 잘 모를 것이다.
오늘 (2015/10/11)일요일 장영실-쇼에서 한글에 대한 내용의 토론 방송이 있었다. 지금에 한국은 훈민정음 해래본이 유네스코 기록 유산에 등제된 우수한 문자 훈민정음은 현 시대에 우리 한국민인에게 가장 자랑스럽고 가치있는 유산이라 생각 된다.
지금은 이렇게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자 (알파벳)를 내가 살아오는 동안 매우 불만스러워 세종대왕을 원망 했던 때가 있었다. 한 때는 한글 기계화를 위해서 펼쳐 쓰기를 주장했던 때도 있었다. 장영실-쇼를 보고 들으면서 오늘에 세계 최고의 문자이지만 속상했던 지난날을 상기해보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동의 힐 수 없는 내용이 있더라도 순수하게 한 개인적인 경험과 그에 따른 서술임을 알아주시면 합니다.
나는 손 글씨를 잘 쓰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기계적 글씨를 선호하는 편이어서 비록 작은 구멍가개를 하드라도 업무상 필요한 문서에 타자기를 사용하면서부터 우리 한글에 대한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에 타자기는 그 유명한 한글 최초 공병우식타자기와 김동훈식 그리고 한글표준 등의 타자기를 사용하면서 기술용어는 영어로 쓰기위해 동일 기종의 영문타자기를 별도로 가지고 있어야 내가 필요한 제안서, 설명서 또는 견적서 같은 문서를 용지를 한글/영문 바꾸어 가면서 작성을 할 수 있었다.
그런 불편을 느끼던 중에 한글/영문 타자기로 용지를 이곳저곳으로 옮기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방법이 볼-타자기를 사용함으로 볼을 영문에서 한글로 바꾸기만 하면 용지를 옮기지 않아도 되는 당시에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는 그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돈 여유가 조금 생기자마자 타자기를 거금 1,100,000원R이나 주고 Remington 볼 타자기로 바꾸었다. 당시에 유명한 볼-타자기는 IBM과 Remington이 있었다.
1970년대에 우리 지역에도 컴퓨터가 도입되어 한전 전기요금 같은 매월 발행하는 고지서에는 전산 처리된 고지서에 한글을 고속 프린트가 가능한 라인프린터로 찍은 한글은 2패스 형태로 “밭침을 아래줄에 쓴 현 샘물체와 비슷한 한글 모양으로 프린트된 요금 고지서가 사용 되었다.
퍼스날 컴커퓨터가 보급 돼면서 사용 된 임팩트 도트프린터 등이 도트 수가 제한을 받는 기술적인 문제로 한글 프린가 영문처럼 매끄럽게 처리되지 않고 1-글자를 표시하기위한 면적을 넓게 차지할 뿐만 아니라 미려하지도 않은 문자 출력에 문제가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80년대 후반부터 아시아권 (대만, 홍콩) 전자쇼에서 처리하기 어려웠던 한자 (漢字)가 찍혀 나오는 드트 프린터가 발표되기 시작하기 시작하면서 자동으로 One-pass 방식으로 한글을 프린트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해결 되는 것 같았다. 그 때 이후 급진적으로 프린트 기술에 진보에 따라 컴퓨터 화면에 폰트가 다양하게 발전하여 이후 화면에 표시된 그림을 포함하는 어떤 내용도 그대로 프린트 할 수 있는 시대로 진보되어 오늘에 한글은 지상 최고의 문자가 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는 스피드가 우열을 가리는 시대가 되어 프린트가 문제가 아니고 입력 속도가 문제가 된다. 그렇다보니 한글은 입력 속도에 관하여 어떤 문자도 따라 올 수 없는 그야말로 최고의 문자로 인정받는 한글이 됐다는 생각을 해 보면서 지난 날을 회상 해 본다.
사진 출처: http://kivrin.tistory.com/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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