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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은 위대한 세종대왕의 애민(愛憫)의 결과로 만들어진 IT 시대에 세계 최고의 간편 문자를 가진 한국인은 그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이것은 실로 우리민족의 큰 축복으로 감사하야 할 일이다. 그러나 지금 스마트폰 시대를 누리는 세대는 우리 한글의 불편했던 지난날을 잘 모를 것이다.
오늘 (2015/10/11)일요일 장영실-쇼에서 한글에 대한 내용의 토론 방송이 있었다. 지금에 한국은 훈민정음 해래본이 유네스코 기록 유산에 등제된 우수한 문자 훈민정음은 현 시대에 우리 한국민인에게 가장 자랑스럽고 가치있는 유산이라 생각 된다.
지금은 이렇게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자 (알파벳)를 내가 살아오는 동안 매우 불만스러워 세종대왕을 원망 했던 때가 있었다. 한 때는 한글 기계화를 위해서 펼쳐 쓰기를 주장했던 때도 있었다. 장영실-쇼를 보고 들으면서 오늘에 세계 최고의 문자이지만 속상했던 지난날을 상기해보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동의 힐 수 없는 내용이 있더라도 순수하게 한 개인적인 경험과 그에 따른 서술임을 알아주시면 합니다.
나는 손 글씨를 잘 쓰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기계적 글씨를 선호하는 편이어서 비록 작은 구멍가개를 하드라도 업무상 필요한 문서에 타자기를 사용하면서부터 우리 한글에 대한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에 타자기는 그 유명한 한글 최초 공병우식타자기와 김동훈식 그리고 한글표준 등의 타자기를 사용하면서 기술용어는 영어로 쓰기위해 동일 기종의 영문타자기를 별도로 가지고 있어야 내가 필요한 제안서, 설명서 또는 견적서 같은 문서를 용지를 한글/영문 바꾸어 가면서 작성을 할 수 있었다.
그런 불편을 느끼던 중에 한글/영문 타자기로 용지를 이곳저곳으로 옮기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방법이 볼-타자기를 사용함으로 볼을 영문에서 한글로 바꾸기만 하면 용지를 옮기지 않아도 되는 당시에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는 그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돈 여유가 조금 생기자마자 타자기를 거금 1,100,000원R이나 주고 Remington 볼 타자기로 바꾸었다. 당시에 유명한 볼-타자기는 IBM과 Remington이 있었다.
1970년대에 우리 지역에도 컴퓨터가 도입되어 한전 전기요금 같은 매월 발행하는 고지서에는 전산 처리된 고지서에 한글을 고속 프린트가 가능한 라인프린터로 찍은 한글은 2패스 형태로 “밭침을 아래줄에 쓴 현 샘물체와 비슷한 한글 모양으로 프린트된 요금 고지서가 사용 되었다.
퍼스날 컴커퓨터가 보급 돼면서 사용 된 임팩트 도트프린터 등이 도트 수가 제한을 받는 기술적인 문제로 한글 프린가 영문처럼 매끄럽게 처리되지 않고 1-글자를 표시하기위한 면적을 넓게 차지할 뿐만 아니라 미려하지도 않은 문자 출력에 문제가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80년대 후반부터 아시아권 (대만, 홍콩) 전자쇼에서 처리하기 어려웠던 한자 (漢字)가 찍혀 나오는 드트 프린터가 발표되기 시작하기 시작하면서 자동으로 One-pass 방식으로 한글을 프린트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해결 되는 것 같았다. 그 때 이후 급진적으로 프린트 기술에 진보에 따라 컴퓨터 화면에 폰트가 다양하게 발전하여 이후 화면에 표시된 그림을 포함하는 어떤 내용도 그대로 프린트 할 수 있는 시대로 진보되어 오늘에 한글은 지상 최고의 문자가 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는 스피드가 우열을 가리는 시대가 되어 프린트가 문제가 아니고 입력 속도가 문제가 된다. 그렇다보니 한글은 입력 속도에 관하여 어떤 문자도 따라 올 수 없는 그야말로 최고의 문자로 인정받는 한글이 됐다는 생각을 해 보면서 지난 날을 회상 해 본다.
사진 출처: http://kivrin.tistory.com/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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