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세계에서 기업과 단체들이 가진 상징인 상표 또는 로고(Logo, Symbol) 만든다. 나라의 상징은 국기, 단체의 상징을 기(旗) 또는 엠블럼, 회사의 상징을 상표 또는 로고 등으로 다양한 방법의 말로 표현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상징을 배타적인 권한을 가지기위해 인증기관에 등록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 기(Emblem)가 처음 언제 어떻게 사용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잘 알지는 못 한다. 하지만 내가 추측하는 그 이유는 나라의 이름과 단체의 이름을 글로서 표현 한다면 각 나라가 가진 언어와 문자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알 수 없는 관계로 독특한 도형을 상징으로 삼으면 글을 몰라도 나라와 단체를 쉽게 인식하기 좋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 된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국기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두말 할 나위 없이 인식에 오류 없이 전 세계 각 나라의 상징 중에 가장 쉽게 혼돈 없이 알아 낼 수 있는 엠블럼이 가장 우수한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태극기를 세계최고의 국기로 내 스스로 평가 하고 싶다.
태극기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대한민국 국기 태극기를 매우 실어했던 때가 있었다. 국민하교 미술시간에 선생님이 태극기를 그리라고 했을 때 이었다.
옛날에는 지금의 상황과 달라서 국기와 만국기를 수작업으로 그려야 할 때가 자주 있었다. 직사각형 바탕에 중심에 적색과 청색 물감으로 중심을 잡아 위는 적색 아래는 청색으로 곡선으로 그리는 부분이 구불구불 하여 제대로 그리기가 어려운 부분이었다. 4괘(건곤감리)의 위치 또한 혼돈이 쉬운 부분이었다.
어떤 때는 적/청색의 위아래 위치마저 혼란스럽다. 지금도 그렇지만 초등학교시절에 태극기에 그려진 4괘(건곤감리)와 그 의미를 알고 싶지도 않았고 사실 지금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나만의 문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수작업으로 그려야 할 그 시절에 나의 마음 이었다.
그른데 유럽 여행이나 관련하여 관계를 해 본 사람들은 아마도 유럽 나라들의 국기가 너무나 식별력이 떨어져서 알아보기 힘들어 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프랑, 이태리, 독일, 러시아 할 것 없이 이들 국기가의 국기는 주로 가로 방향으로 몇 줄의 채색한 줄에 의해 알아보게 된다.
한 때 내 삶의 중심에서 한참 일을 해야 할 빡빡했던 시절에는 태극기에 대한 어떤 느낌도 갖지 못 한 채 지나왔다. 이제는 그 삶은 한가운데서 밀려나 이런 저런 지난 세상의 일들을 회상하고 현실을 느끼면서 지난날의 잘못 한 잘한 일들의 생각들을 복기 하는 시간을 종종 가지게 된다.
특히 내가 자주 들렸던 인터넷에서 검색을 할 때 종종 나라이름과 함께 그 나라의 국기가 나타나고 그 나라의 위치까지 알 수 있게 그림으로 보여주는 곳이 많다. 그럴 때 느끼는 것이 대한민국 국기가 가장 독특하여 대한민국 국기 식별이 가장 쉬워 국기를 만든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나는 새삼스럽게 대한민국의 상징인 태극기와 한글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근간에 정치권에서는 대한민국의 상징 태극기와 애국가를 박원순 서울 시장과 이미 법적 해산된 통진당이 공식행사에서 태극기와 애국가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 총리까지 지낸 국회의원 한명숙은 태극기를 짓밟고 서 있는 사진을 찍고도 그 잘못을 몰랐던 모양이다.
만약에 대한민국 대표기업 현대 삼성 엘지 같은 기업이 상표(로고)를 사용 하지 않겠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기업이 망하려면 회사의 상징물을 무시해도 될 것이다. 나라가 망하지 않으려면 국기(國旗)도 국가(國歌)도 존중하고 소중히 해야만 할 것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의 상징인 태극기에 소중함을 생각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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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9일 수요일
내가 싫어했던 태극기
2015년 8월 15일 토요일
대한민국 민주화 성공은 경제력 때문이다.
오늘이 대한민국 광복70주년이다. 어떤 숫자가 특별한 의미를 갖지는 않겠지만 사람들은 십단위수의 오버플로가 발생하는 수에 뭔가 큰 의미를 부여 하여 10년이란 긴 시간에 덤덤해진 상태에 일신(Refresh) 하려 한다.
내가 살아온 대한민국을 되돌아본다면: 참으로 아찔한 국운이 갈린 순간이 많았던 것을 기억하게 된다. 광복 70년을 맞아 세계 속에 한국을 자평을 한다면 해방 당시에 세계최빈국에서 현재는 경제력 10위권에다 민주주의까지 정착시킨 나라로 이제는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성장한 세계 유일의 나라로 변신했다.
“만약”이라는 단어와 결부 시켜 회상 해 본다면: 만약 미국이 일본에 원폭 투하로 일본이 항복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오늘이 있었을까? 만약 이승만 대통령이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백범 김구선생님 주장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을 하지 않았다면 (북한이 도발한 6.25 전쟁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6.25에 내 고향 포항까지 밀렸던 우리 마을 도 접령 된 전황은 수일 내 완전 공산화 통일이 되어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으로 통일 직전에 있었다.
만약 그 때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이 하지 않았다면 (미국을 비롯한 UN 참전 16개국 + 의료지원5개국의 지원)? 지금 대한민국이 있었을까? 만약 박정희가 자유를 누리면서 부패의 길로 빠져 들었던 시대에 1961년 5.16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었을까? 만약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 발전을 시키지 못 했다면 오늘과 같은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을까?
광복 70년의 아침에 내 생각으로는 자유대한민국이 처음 유엔에 등록도 되지 않은 대한민국이 국가 출범이 지방자치제를 실행하는 지나치게 자유를 가진 민주주의 국가로 출발한 것이 지나친 자유와 선거 부정으로 부패의 나라로 된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에 시골 면에서 내 친구 아버지가 면의원에 당선 된 것을 기억하고, 당시에는 면의원, 도의원, (구의원?) 시의원, 국회의원이 있어 선거 때가 되면 가난한 국민들은 작은 고무신 한 켤레에도 마음을 뺐기는 혼란 했던 기억이 있다.
대한민국의 경재 발전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말 한 그 유명한 한국적 민주주의에 바탕 하여 강력히 시행한 계획과 실천을 군인이 작전을 하듯이 목표지향적 추진으로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가정의례준칙 만들고 교육헌장을 만들어 국가 개조를 한 것이 중요한 요소가 되었던 것을 부정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각종 의례가 우리의 본래의 것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과거우리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잊어버린 그 전통적 사고와 생활은 일본의 지배하에서도 버리지 않고 이어진 전통이 주었던 개인 경재에 무거운 짐이었던 것이 전통 관혼상제였다. 그 전통의 틀을 국가가 과감히 끊어 준 것 또한 개인과 국가 발전에 미친 큰 요소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미래의 목표가 있다. 목표설정만 잘 한다고 목적을 이룰 수 없다. 올바른 목표설정에 강력한 계획에 따른 추진과 실행이 있을 때만 목표에 다다를 수가 있다. 우리의 새마을 운동이 여러 나라에 전파 되었지만 아직 그 나라들의 성공은 알려지지 않는 것이 바로 그 나라가 가진 전통적 비합리적 요소를 제거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주주의도 사회주의도 경제력 없이는 지킬 수 없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성공한 민주화의 밑천은 대한민국의 경제력이 만들어 냈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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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4일 금요일
태국 친구 딸 포어는 이혁재의 왕 팬이라 한다
But my daughter took me out for lunch at the mall, I attach some pictures with this mail, and you will see there was a concert of Korean boy band "Super Junior" favorite band of mydaughter.
But not a full band, only 이혁재 and 이동해, my daughter told me they will be soldiers by the end of this year, so they travel to meet their fan club around Asia, my daughter is a big fan of 이혁재.
My university will start new semester on next Monday, busy time for university and also staff. Library has to open 7days from 08.30 am. - 21.00 pm.
I heard the news, no more patients of MERS in Korea, it means your government can control it, good news.
2008년 4월부터 지금까지 7년 동안 변함없는 우정을 나눈 태국 친구 파차라는 나의 가장 신뢰하는 해외 펜팔 친구이다. 금년 들어 과중한 업무로 전보다 뜸해진 메일이 나를 슬프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딸이 없는 관계로 그녀의 무남독녀를 마치 나의 딸처럼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어제 받은 메일에서도 자매 같은 모녀의 사진에서 그 딸이 이제 성인으로 직업이 된 것을 보니 많은 세월이 흐른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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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0일 월요일
아르헨티나 친구가 보내온 스라이드 쇼.
From: "Gustavo César"
Absolutely fantastic!
Just move your mouse through the pictures to see the way Buenos Aires looked in 1945 and the way it looks now.
While certain areas remain almost the same, some others have changed to the point of being urecognizable!
Excelente trabajo. Son fotos viejas y nuevas sacadas en el mismo lugar.
A través de un truco fotográfico se puede ver casi simultáneamente el presente y el pasado, simplemente abriendo el link y pasando el mouse sobre cada una de las fotos ofrecidas:
Podes ampliar para arriba y para abajo, también pasar el mouse de derecha e izquierda.
아르핸티나 친구가 보내온 것입니다.
아주 흥미로운 장면입니다!
1945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보려면 마우스를 그림 위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현재를 보려면 외쪽으로 움직이면 됩니다. 장면을 넘기려면 좌 또는 우측 ‘<’이나 ‘>’를 클릭 합니다.
어떤 장소는 거의 그대로인 반면에 일부는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변화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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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열대야 해결
나의 열대야: 금년에는 지난 여러 해 보다 더 덮게 느껴졌다. 나는 냉방 장치를 이용하지 않은 생활을 한지가 오래이다. 그렇게 된 동기와 이유는 소득도 없으면서 누릴 걸 다 누리고 산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환경을 내 몸에 맞춤으로 내 몸의 환경 적응력이 떨어짐으로 부득이 어려운 환경이 처했을 때를 적응이 힘들 것 같은 마음 때문이다.
물론 선풍기는 사용하고 있다. 지난 일주일은 방송에 폭염 주의보와 열대야에 많은 국민들이 힘들어한다는 보도를 많이 했다.
나는 지난 밤 까지 총 10여일을 2층 옥상에서 열대야를 해결 했다. 방안에는 선풍기 2대를 돌려 우선은 피부에 닿는 바람결에 기화되는 땀과 뺏기는 체열 때문에 약간 시원함을 느끼기는 하지만 밤새 최고속도로 돌리는 선풍기 바람은 그 바람에 질식 할 수도 있다.
나는 콘크리트 슬라브 된 옥상에 아직도 낮 동안 달구어진 열기를 느끼면서 서서 주변을 둘러 보는 동안 간간히 흔들어주는 미풍에 시원함을 느끼게 됐다.
이 체험을 하기 전에는 온종일 달구어진 슬라브가 밤새 계속 뜨거울 것으로 생각 했는데 오후 9시가 되면 거의 미열만 남아 얇은 야외용 은박지 자리만 까고 누워도 괜찮은 느낌이다.
어제 20메타 길이로 준비한 전원 확장 코드를 연결하여 노트북을 연결하고 윈도우가 부팅되고 나니 기대이상으로 와이파이 레벨이 거의 풀로 뜬다. 인터넷은 와이파이로 완벽히 준비가 되어 심심하지 않아도 된다. 전자제어 계통에 일을 하면서도 통신수단의 다양성과 그 능력이 이렇게까지 발전 되리라는 것을 예상 하지 못 했다.
이-메일을 정리 하면서 2시간을 보내는 동안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은 은박지 자락을 들썩 거려 작업을 방해 받아도 점차 시원해오는 것으로 상쇄하고도 남는다. 노트북을 켜 놓은 채로 잠이 들었는데 추워서 깨어 보니 1시 30분인데 너무 써늘하여 긴소매 긴 잠옷을 찾아 입고 다시 잠이 들었는데 추워서 깨어보나 새벽 4시경이다. 하는 수 없이 후퇴하여 방에 오니 아직도 여기는 후끈거리는 열대야 그대로이다.
이런 방법을 개발하여 나는 하룻밤 사이에 2차례나 잠을 깨야 하지만 그래도 그 자연의 시원한 밤-바람은 매일 밤 나를 옥상으로 오게 만들었다. 이런 생활을 한지가 10일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몸 간수를 잘못하여 팔과 다리 허벅지에 모기가 흡혈을 해간 흔적 빽빽하다. 이제 나는 한 낮에 열기가 열대야 보다 더 걱정이다.
우리 집 2층 현관 음지에서 센시리온 센서를 사용하고 지그비로 송/수신하는 무선 모니터링 온도는 어제(2015/08/06)오후 온도가 37.7도에 습도가 44.3 퍼센트를 기록하고 있다. 팬티 하나만 입고도 낮에는 더워서 2번을 샤워를 해야 하는 더위이다.
혹시 저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분들은 옥상을 이용하여 열대야를 해결 해 보시면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위치에 따라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여름밤의 별과 흘러가는 달을 보면서 시원한 밤바람에 자는 잠은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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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Greece)# 6 - 비코스(Vikos)협곡/메테오라(Meteora)
| 그리스(Greece)#6-비코스(Vikos)협곡/메테오라(Meteora)
그리스에서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아름다운 경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비코스 협곡일것이다.
협곡의 길이만 12 km이고 협곡 양 옆의 절벽의 높이가 900 m 에 이른다.
이 협곡은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협곡으로 1997년 기네스 북(Guiness Book)에 등재되었다.
협곡의 폭 1,100 m 에 깊이가 900 m 라는 비(比)로 보아 상대적으로 깊은 계곡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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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도 녹조 문제가~
오늘(2015/08/10)아침 뉴스에서 미국에서도 심각한 녹조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한강 낙동강 녹조는 이명박 정부가 대운하공약을 후퇴하여 그 대신 만든 4대강 사업으로 발생한 후유증으로 많은 사회단체나 일부 학자들까지 클레임을 걸어 지금도 끝나지 않은 평가임을 잘 알고 있다.
평범한 비-전무가의 입장에서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고 지금까지 살면서 보고 느낀 비-학문적인 오직 삶에서 체험한 지식으로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진 보 때문에 발생 했다는 녹조는 인정 할 수 없다. 내가보는 그 클레임은 이명박 정부의 업적을 격하하려는 사람들의 편향된 시각이라고 볼 수밖에 다른 이유가 없다.
마침 오늘 미국에 발생 했다는 엄청난 녹조현상은 새로 제방이나 보를 만들어 생긴 현상이 아니고 이미 존재하던 강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며칠 전 뉴스에서 남해안 바다에는 발생한 적조 때문에 황톳물을 뿌리면서 적조를 막으려는 노력이 계속 되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어릴 때 시골에 살면서 느낀 자연 현상은 옛날에는 마을 집집마다 마당 한쪽에는 모두가 두엄(퇴비)을 만들기 위한 각종 생활 쓰레기를 쌓고 거기에 겨울에는 퇴비를 잘 썩게 만들기 위해 파 해쳐 다시 쌓는 작업을 할 때 인분(똥물)을 퇴비 사이에 흩뿌리게 된다. 잘 부패면 나중에 그것을 논밭에 퇴비로 사용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노천에 만들어진 퇴비장에는 큰 비가 오면 그 퇴비에서 흘러내리는 누액이 좁은 도랑을 따라 마을 앞 개천으로 또는 논으로 또는 미나리꽝으로 다양하게 흘러든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사실 나는 지금의 농촌의 환경을 정확하게 알지를 못한다. 그렇지만 느낌으로 크게 달라진 내용이 전국 방방곡곡에는 대규모 가축으로: 소, 돼지, 닭 염소, 개 등과같이 육상에서 대규모로 사육하는 것이 옛날과는 다르다.
10여 년 전에 등산 멤버 중에 돼지 종돈을 생산하는 친구와 친하게 지내면서 나는 그가 경영하는 종돈 장을 방문하고 그가 당면한 애로사항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애로가 돈사에서 모아놓은 돼지가 내놓은 오물이다. 그 당시에는 모아둔 돼지 분뇨를 처리업체에 위탁 하면 그 업체는 대량으로 모아 그 업체는 다시 바다 깊숙이 해양 투기하여 처리한다고 했다. 당시에는 그것은 불법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금지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본 옛 날 시골 그 장면을 지금으로 생각하면 4대강을 미니어처 형태로 만든 것과 같이 생각이 든다. 우리는 질병을 연구하고 생물을 연구할 때 연구실에서 실제 크기나 실재 대상이 아닌 대체 내지는 소형으로 실험을 할 때 자주 쓰이는 방법과 비견해 생각한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은 어떤 생명체가 사는 동안에는 취한 만큼에 비례하는 배설이 따르고 그 배설은 환경을 오염하는 물질이라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 배설의 먹이사슬을 보면 옛날에는 똥개를 이용하여 어린아이의 배변을 개가 먹도록 하고, 노출된 배변은 똥파리가 달려들어 일부를 먹어치우고 남은 일부는 또 다른 미생물이 먹어치우고 그 남은 것이 빗물에 휩쓸려 큰 강에 모이면 또 다른 수생 동물이나 미생물 또는 수생 식물이 영양으로 취할 것이다.
물론 지금의 인간은 환경오염을 해결할 능력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것에는 비용이 따르게 되어 그 비용부담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을 회피하기도 한다. 한 예를 들면 우주정류장에서는 먹고 배설한 물을 재생하여 사용을 하지 않는다면 살 수가 없을 것이다. 그 우주 공간에서처럼 한다면 환경은 좋아질 수 있지만 그 비용이 큰 문제가 될 이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역설적인 생각은 위에 말한 옛 고향 농촌 환경과 비교하여 생각하면 물이 흐르지 않으면 그 물에 포함된 유기물질의 성분의 내용에 따라 이끼, 개구리밥 같은 수생식물이, 짙은 유기물이 모인 곳에는 실지렁이 같은 동물들이 왕성 하게 번식하게 된다.
지금은 서구화된 생활방식 때문에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은 하늘 높게 뻗어 올린 고층 아파트에서, 빽빽이 들어선 도시의 주거환경에서 어마어마한 량의 인간이 배설한 것들이 정화되어 그 폐수가 강으로 바다로 흘러 갈 것인데 그것이 잘못 처리기 된다면 혹은 덜 정화된 상태로 흘러 나간다면 우리는 아마도 살 수 없는 환경을 인간이 만든 결과로 귀착 될 것이다.
내 작은 체험으로 생각 해 볼 때 4대강 사업에서 만들어진 보 때문에 녹조가 발생했다고 다시 파괴하여 원상태로 만든 후에도 또 발생 했다면 그때는 어떤 방법이 있겠는가? 큰 돈 들여 만든 시설물을 큰 돈 들여 또 파괴하여 국민의 혈세만 낭비하고 그 보 때문에 녹조가 발생했다는 사화단체에 먹고 살린 결과만 있을 뿐이다.
환경 단체와 일부 4대가 반대를 하는 학자들은 지금은 바다에 해양투기도 안 하는데 적조가 발생했고 대규모 댐에 갇힌 물에서 녹조가 적거나 없는 이유를 밝히고 미국에서 발생한 것과 비교하여 그 이유를 설명 할 수 있게 해야만 국민들은 그들의 말을 믿을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이 금강산 수공에 대비한 댐을 만들었을 때 많은 학자들이 타당성을 말 했는데 이후 정부가 바뀌면서 전 정권을 사기꾼으로 만들더니 다시 김대중 대통령은 더 높이 쌍고 그분의 업적으로 했던 것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는데 4대강 사업 때문에 녹조가 발생 했다는 것이 문제 시비가 금강산댐처럼 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엉뚱한 생각은; 녹조는 사전에서 물에 번식하는 하등 식물이라 한다. 그렇다면 왜 그 녹조가 생겼을까? 아마도 그 생물이 살기에 적합한 먹거리가 많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유속이 느린 것이 원인일까? 만약 그렇다면 수돗물처럼 맑은 물을 유속을 느리게 하면 녹조가 발생 할 것인가? 아니라면 원인은 녹조가 자라기 좋은 영양가 있는 물질 때문이 아닐까?
수질정화능력이 있는 수생식물 갈대, 부들, 달뿌리풀, 부레옥잠, 창포 등은 어떻게 수질을 정화 할까. 아무래도 물속의 영양분을 먹어치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녹조 역시 물속의 녹아있는 영양분을 먹어서 번성 할 것이다. 다만 그들이 어류에 해가 되었을 뿐이라는 결론을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미 물속에 오염물질을 먹어치운 녹조를 걸러 내기만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당연히 수질은 좋아 질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녹조가 발생하지 않도록 수질을 높이던가 아니면 그 녹조를 이용하여 강물을 정화하는 방법을 생각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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