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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17일 목요일

대구 범어산 처음보는 나무 발견, 이름 아시는 분?


언제나 그랬듯이 산에서 들에서 좋은 나무를 보면 그냥 지나치기 싫은 것이 아마도 시골 출신의 감출 수 없는 마음이라 생각 된다. 지난 일요일에는 친구와 대구 범어산을 트레킹 했다.


하산 길은 시내버스 종점이 있는 “로고스 장로교회”가 있는 골자기로 하게 됐다.
하산 마지막 2/3 지점에서 우리는 전에 보지 못한 나무를 보게 되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춘양목이나 편백나무, 삼나무처럼 곧게 자란 것이 몸통이 곱게 잔가지가 전혀 없이 자랐던 자국도 없는 특별한 나무를 보았다. 그 나무의 잎은 소나무과 나무와는 완전히 다른 은행나무 잎이나 포프라 나무잎처럼 넓은 것이 특징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다 알듯이 한국의 산에는 5.16 이후 산림녹화를 하면서 심은 나무의 종류가 낙엽송, 잣나무, 편백나무(?), 이태리 포프라, 오리목, 밤나무, 아카시나무 등이 주류이었다. 그래서 산은 짙어져서 밀림이 됐지만 쓸모 있는 나무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20년 가까이 등산모임에 참여 하면서 보아온 대한민국 산에 나무는 구부러진 소나무에 일제 때 송진을 채취했던 V형 흠집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는 소나무를 많이 보게 된다. 사진에 보인 것처럼 내가 처음 본 이 나무는 뿌리부분에서부터 대나무처럼 쭉 뻗은 몸통에 흠결 없이 매끈한 나뭇결이 아주 쓸모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좋아하는 춘양목(적송)과는 그 몸통은 매우 유사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부가 이 나무를 조사하여 많이 번식 시켰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2015년 8월 19일 수요일

내가 싫어했던 태극기


근래 들어 나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태극기가 너무나 소중하고 지구상 어느 국가도 갖지 못한 세계 최고의 조형미와 식별력을 가진 것으로 감탄스러운 생각을 하게 된다. 모든 나라와 단체가 자기들을 상징하는 기(旗, Emblem, Flag)를 사용한다.

지금은 세계에서 기업과 단체들이 가진 상징인 상표 또는 로고(Logo, Symbol) 만든다. 나라의 상징은 국기, 단체의 상징을 기(旗) 또는 엠블럼, 회사의 상징을 상표 또는 로고 등으로 다양한 방법의 말로 표현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상징을 배타적인 권한을 가지기위해 인증기관에 등록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 기(Emblem)가 처음 언제 어떻게 사용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잘 알지는 못 한다. 하지만 내가 추측하는 그 이유는 나라의 이름과 단체의 이름을 글로서 표현 한다면 각 나라가 가진 언어와 문자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알 수 없는 관계로 독특한 도형을 상징으로 삼으면 글을 몰라도 나라와 단체를 쉽게 인식하기 좋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 된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국기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두말 할 나위 없이 인식에 오류 없이 전 세계 각 나라의 상징 중에 가장 쉽게 혼돈 없이 알아 낼 수 있는 엠블럼이 가장 우수한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태극기를 세계최고의 국기로 내 스스로 평가 하고 싶다.

태극기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대한민국 국기 태극기를 매우 실어했던 때가 있었다. 국민하교 미술시간에 선생님이 태극기를 그리라고 했을 때 이었다.

옛날에는 지금의 상황과 달라서 국기와 만국기를 수작업으로 그려야 할 때가 자주 있었다. 직사각형 바탕에 중심에 적색과 청색 물감으로 중심을 잡아 위는 적색 아래는 청색으로 곡선으로 그리는 부분이 구불구불 하여 제대로 그리기가 어려운 부분이었다. 4괘(건곤감리)의 위치 또한 혼돈이 쉬운 부분이었다.

어떤 때는 적/청색의 위아래 위치마저 혼란스럽다. 지금도 그렇지만 초등학교시절에 태극기에 그려진 4괘(건곤감리)와 그 의미를 알고 싶지도 않았고 사실 지금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나만의 문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수작업으로 그려야 할 그 시절에 나의 마음 이었다.

그른데 유럽 여행이나 관련하여 관계를 해 본 사람들은 아마도 유럽 나라들의 국기가 너무나 식별력이 떨어져서 알아보기 힘들어 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프랑, 이태리, 독일, 러시아 할 것 없이 이들 국기가의 국기는 주로 가로 방향으로 몇 줄의 채색한 줄에 의해 알아보게 된다.

한 때 내 삶의 중심에서 한참 일을 해야 할 빡빡했던 시절에는 태극기에 대한 어떤 느낌도 갖지 못 한 채 지나왔다. 이제는 그 삶은 한가운데서 밀려나 이런 저런 지난 세상의 일들을 회상하고 현실을 느끼면서 지난날의 잘못 한 잘한 일들의 생각들을 복기 하는 시간을 종종 가지게 된다.

특히 내가 자주 들렸던 인터넷에서 검색을 할 때 종종 나라이름과 함께 그 나라의 국기가 나타나고 그 나라의 위치까지 알 수 있게 그림으로 보여주는 곳이 많다. 그럴 때 느끼는 것이 대한민국 국기가 가장 독특하여 대한민국 국기 식별이 가장 쉬워 국기를 만든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나는 새삼스럽게 대한민국의 상징인 태극기와 한글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근간에 정치권에서는 대한민국의 상징 태극기와 애국가를 박원순 서울 시장과 이미 법적 해산된 통진당이 공식행사에서 태극기와 애국가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 총리까지 지낸 국회의원 한명숙은 태극기를 짓밟고 서 있는 사진을 찍고도 그 잘못을 몰랐던 모양이다.

만약에 대한민국 대표기업 현대 삼성 엘지 같은 기업이 상표(로고)를 사용 하지 않겠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기업이 망하려면 회사의 상징물을 무시해도 될 것이다. 나라가 망하지 않으려면 국기(國旗)도 국가(國歌)도 존중하고 소중히 해야만 할 것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의 상징인 태극기에 소중함을 생각 해 보았다.

2015년 8월 15일 토요일

대한민국 민주화 성공은 경제력 때문이다.


태극기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오늘이 대한민국 광복70주년이다. 어떤 숫자가 특별한 의미를 갖지는 않겠지만 사람들은 십단위수의 오버플로가 발생하는 수에 뭔가 큰 의미를 부여 하여 10년이란 긴 시간에 덤덤해진 상태에 일신(Refresh) 하려 한다.

내가 살아온 대한민국을 되돌아본다면: 참으로 아찔한 국운이 갈린 순간이 많았던 것을 기억하게 된다. 광복 70년을 맞아 세계 속에 한국을 자평을 한다면 해방 당시에 세계최빈국에서 현재는 경제력 10위권에다 민주주의까지 정착시킨 나라로 이제는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성장한 세계 유일의 나라로 변신했다.

“만약”이라는 단어와 결부 시켜 회상 해 본다면: 만약 미국이 일본에 원폭 투하로 일본이 항복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오늘이 있었을까? 만약 이승만 대통령이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백범 김구선생님 주장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을 하지 않았다면 (북한이 도발한 6.25 전쟁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6.25에 내 고향 포항까지 밀렸던 우리 마을 도 접령 된 전황은 수일 내 완전 공산화 통일이 되어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으로 통일 직전에 있었다.

만약 그 때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이 하지 않았다면 (미국을 비롯한 UN 참전 16개국 + 의료지원5개국의 지원)? 지금 대한민국이 있었을까? 만약 박정희가 자유를 누리면서 부패의 길로 빠져 들었던 시대에 1961년 5.16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었을까? 만약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 발전을 시키지 못 했다면 오늘과 같은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을까?

광복 70년의 아침에 내 생각으로는 자유대한민국이 처음 유엔에 등록도 되지 않은 대한민국이 국가 출범이 지방자치제를 실행하는 지나치게 자유를 가진 민주주의 국가로 출발한 것이 지나친 자유와 선거 부정으로 부패의 나라로 된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에 시골 면에서 내 친구 아버지가 면의원에 당선 된 것을 기억하고, 당시에는 면의원, 도의원, (구의원?) 시의원, 국회의원이 있어 선거 때가 되면 가난한 국민들은 작은 고무신 한 켤레에도 마음을 뺐기는 혼란 했던 기억이 있다.

대한민국의 경재 발전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말 한 그 유명한 한국적 민주주의에 바탕 하여 강력히 시행한 계획과 실천을 군인이 작전을 하듯이 목표지향적 추진으로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가정의례준칙 만들고 교육헌장을 만들어 국가 개조를 한 것이 중요한 요소가 되었던 것을 부정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각종 의례가 우리의 본래의 것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과거우리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잊어버린 그 전통적 사고와 생활은 일본의 지배하에서도 버리지 않고 이어진 전통이 주었던 개인 경재에 무거운 짐이었던 것이 전통 관혼상제였다. 그 전통의 틀을 국가가 과감히 끊어 준 것 또한 개인과 국가 발전에 미친 큰 요소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미래의 목표가 있다. 목표설정만 잘 한다고 목적을 이룰 수 없다. 올바른 목표설정에 강력한 계획에 따른 추진과 실행이 있을 때만 목표에 다다를 수가 있다. 우리의 새마을 운동이 여러 나라에 전파 되었지만 아직 그 나라들의 성공은 알려지지 않는 것이 바로 그 나라가 가진 전통적 비합리적 요소를 제거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주주의도 사회주의도 경제력 없이는 지킬 수 없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성공한 민주화의 밑천은 대한민국의 경제력이 만들어 냈다는 생각을 해 본다.

2015년 8월 14일 금요일

태국 친구 딸 포어는 이혁재의 왕 팬이라 한다


But my daughter took me out for lunch at the mall, I attach some pictures with this mail, and you will see there was a concert of Korean boy band "Super Junior" favorite band of mydaughter. 
But not a full band, only 이혁재 and 이동해, my daughter told me they will be soldiers by the end of this year, so they travel to meet their fan club around Asia, my daughter is a big fan of 이혁재. 
My university will start new semester on next Monday, busy time for university and also staff. Library has to open 7days from 08.30 am. - 21.00 pm. 
I heard the news, no more patients of MERS in Korea, it means your government can control it, good news. 
2008년 4월부터 지금까지 7년 동안 변함없는 우정을 나눈 태국 친구 파차라는 나의 가장 신뢰하는 해외 펜팔 친구이다. 금년 들어 과중한 업무로 전보다 뜸해진 메일이 나를 슬프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딸이 없는 관계로 그녀의 무남독녀를 마치 나의 딸처럼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어제 받은 메일에서도 자매 같은 모녀의 사진에서 그 딸이 이제 성인으로 직업이 된 것을 보니 많은 세월이 흐른 느낌이 든다.

2015년 8월 10일 월요일

아르헨티나 친구가 보내온 스라이드 쇼.


 From: "Gustavo César"

Absolutely fantastic!
Just move your mouse through the pictures to see the way Buenos Aires looked in 1945 and the way it looks now.
While certain areas remain almost the same, some others have changed to the point of being urecognizable! 

Excelente trabajo. Son fotos viejas y nuevas sacadas en el mismo lugar.
A través de un truco fotográfico se puede ver casi simultáneamente el presente y el pasado, simplemente abriendo el link y pasando el mouse sobre cada una de las fotos ofrecidas:
Podes ampliar para arriba y para abajo, también pasar el mouse de derecha e izquierda.
 
아르핸티나 친구가 보내온 것입니다.
아주 흥미로운 장면입니다!
1945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보려면 마우스를 그림 위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현재를 보려면 외쪽으로 움직이면 됩니다. 장면을 넘기려면 좌 또는 우측 ‘<’이나 ‘>’를 클릭 합니다.
어떤 장소는 거의 그대로인 반면에 일부는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변화 되었습니다.

옥상에서 열대야 해결


나의 열대야: 금년에는 지난 여러 해 보다 더 덮게 느껴졌다. 나는 냉방 장치를 이용하지 않은 생활을 한지가 오래이다. 그렇게 된 동기와 이유는 소득도 없으면서 누릴 걸 다 누리고 산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환경을 내 몸에 맞춤으로 내 몸의 환경 적응력이 떨어짐으로 부득이 어려운 환경이 처했을 때를 적응이 힘들 것 같은 마음 때문이다.

물론 선풍기는 사용하고 있다. 지난 일주일은 방송에 폭염 주의보와 열대야에 많은 국민들이 힘들어한다는 보도를 많이 했다. 

나는 지난 밤 까지 총 10여일을 2층 옥상에서 열대야를 해결 했다. 방안에는 선풍기 2대를 돌려 우선은 피부에 닿는 바람결에 기화되는 땀과 뺏기는 체열 때문에 약간 시원함을 느끼기는 하지만 밤새 최고속도로 돌리는 선풍기 바람은 그 바람에 질식 할 수도 있다.

나는 콘크리트 슬라브 된 옥상에 아직도 낮 동안 달구어진 열기를 느끼면서 서서 주변을 둘러 보는 동안 간간히 흔들어주는 미풍에 시원함을 느끼게 됐다. 

이 체험을 하기 전에는 온종일 달구어진 슬라브가 밤새 계속 뜨거울 것으로 생각 했는데 오후 9시가 되면 거의 미열만 남아 얇은 야외용 은박지 자리만 까고 누워도 괜찮은 느낌이다.

어제 20메타 길이로 준비한 전원 확장 코드를 연결하여 노트북을 연결하고 윈도우가 부팅되고 나니 기대이상으로 와이파이 레벨이 거의 풀로 뜬다. 인터넷은 와이파이로 완벽히 준비가 되어 심심하지 않아도 된다. 전자제어 계통에 일을 하면서도 통신수단의 다양성과 그 능력이 이렇게까지 발전 되리라는 것을 예상 하지 못 했다.

이-메일을 정리 하면서 2시간을 보내는 동안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은 은박지 자락을 들썩 거려 작업을 방해 받아도 점차 시원해오는 것으로 상쇄하고도 남는다. 노트북을 켜 놓은 채로 잠이 들었는데 추워서 깨어 보니 1시 30분인데 너무 써늘하여 긴소매 긴 잠옷을 찾아 입고 다시 잠이 들었는데 추워서 깨어보나 새벽 4시경이다. 하는 수 없이 후퇴하여 방에 오니 아직도 여기는 후끈거리는 열대야 그대로이다.

이런 방법을 개발하여 나는 하룻밤 사이에 2차례나 잠을 깨야 하지만 그래도 그 자연의 시원한 밤-바람은 매일 밤 나를 옥상으로 오게 만들었다. 이런 생활을 한지가 10일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몸 간수를 잘못하여 팔과 다리 허벅지에 모기가 흡혈을 해간 흔적 빽빽하다. 이제 나는 한 낮에 열기가 열대야 보다 더 걱정이다.

우리 집 2층 현관 음지에서 센시리온 센서를 사용하고 지그비로 송/수신하는 무선 모니터링 온도는 어제(2015/08/06)오후 온도가 37.7도에 습도가 44.3 퍼센트를 기록하고 있다. 팬티 하나만 입고도 낮에는 더워서 2번을 샤워를 해야 하는 더위이다.

혹시 저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분들은 옥상을 이용하여 열대야를 해결 해 보시면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위치에 따라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여름밤의 별과 흘러가는 달을 보면서 시원한 밤바람에 자는 잠은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Greece)# 6 - 비코스(Vikos)협곡/메테오라(Meteora)


그리스(Greece)#6-비코스(Vikos)협곡/메테오라(Meteora)

그리스에서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아름다운 경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비코스 협곡일것이다.
협곡의 길이만 12 km이고 협곡 양 옆의 절벽의 높이가 900 m 에 이른다.
이 협곡은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협곡으로 1997년 기네스 북(Guiness Book)에 등재되었다.
협곡의 폭 1,100 m 에 깊이가 900 m 라는 비(比)로 보아 상대적으로 깊은 계곡이라는 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