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neField: 2월 2014

2014년 2월 24일 월요일

일본은 영국이 아니다.

논리에 맞지 않는 일본은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나의 생각.

솔직히 내가 그 표기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밝혀 말 할 수는 없지만 합리적인 생각은 할 수 있다. 우리의 동해는 일본열도에서는 서해에 해당 하지만 그들은 서해라는 위치상의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일본은 우리가 다 아는 섬나라이다. 그러한 그들이 한 때 간도 크게 미국과 아시아 대륙 국가들과 러시아를 포함하는 나라를 상대로 침약전쟁을 했었다. 결국 일본은 세계를 상대로 간 큰 전쟁을 한 것이다. 결국 간땡이 부은 놈들이 북한이 한국을 향해 불바다 만드는 말을 말하듯이 미국에 의해 불바다가 되어 두 손을 들었다.

동해는 우리 한국만의 동쪽 바다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한 때 일본처럼 바다 한가운데 있는 영국이 전 세계를 제폐하면서 영국을 기준으로 만들어 진 것이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시간과 경도가 0으로 시작 하고 있는 것처럼 일본이 대륙의 동쪽 바다를 지들 기준의 바다로 만들려는 논리에 맞지 않는 고집을 부리고 있다.

합리적인 사고로 명명을 한다면 아시아 대륙의 동쪽에 있는 바다를 당연히 동해라 해야 하는 것이 타당한 명칭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있을 수 없다. 일본이 영국처럼 지들 나라 기준으로 동해를 일본해로 명명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설사 과거에 아시아 여러 나라와 한국이 힘이 없는 상태에서 일본에 의해 일본해로 불리어 졌다 해도 지금은 바로 잡아야 할 때이다. 우리의 서해 바다를 황해로 명칭이 됨으로 중국과 바다 이름으로 불편함이 없듯이 지명과 바다의 명칭이 일본의 기준으로 하는 이름이 고정 되어서는 절대로 아니 될 것이다.

우리의 동해는 곧 중국이나 러시아와 기타 대륙에 붙어 있는 나라 모두에게 동해인 것이다. 이것은 아시아인과 세계인의 입장에서 절대로 동해 표기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

내가 사는 곳




오래전 사진이지만 내가 사는 곳 상공을 국내선 비행기내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옛 블로그를 정리하다가 다시 옮기게 된 것입니다. 내가 가진 특별한 재능이 없다보니 그저 간단한 사진으로라도 내 자리를 채우고 싶어 다시 올리게 됐습니다.

2014년 2월 21일 금요일

인간은 이기적 마음에 따른 감각과 행동을 한다


우여곡절 끝에 남북 이산가족 만남이 금강산에서 열렸다.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나고 싶어 애태우던 분들은 이제 하루가 다르게 이산의 아픈 마음을 간직한 채 급속히 사라져간다.

상봉의 장면에서 말씨를 보면 남한에서 한 평생을 살았음에도 그들의 말씨는 여전히 변함없는 북한 말씨를 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 뿐만 아니라 지금 내 주변에 살고 있는 북한 출신 지인들도 여전히 북한식 억양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모 종편 방송에서 진행하는 탈북미녀들이 방송에 출연 하여 말을 하는 것을 보면 거의가 다 표준말을 구사하여 말씨만 듣고서 북한 출신이라고 알아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런 점을 오래 전부터 대구 교동시장에 뿌리를 내린 여러 북한출신 지인들 모두 너무나 북한 억양이 강해서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던 분도 있었다.

나는 왜 이런 현상을 보일까? 하는 강한 의문을 가져 보았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인간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빨리 그리고 잘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하기 싫은 것은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영어 및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유치원에서 대학 까지 거기에 더하여 이미 입이 굳어버린 직업을 가진 기성세대 까지 외국어 공부에 열광하며 잘 배운 것을 보게 된다.

그에 반해 유독 6.25에 때 내려와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말씨를 못하는 사람들은 좋게 생각하면 북한 출신 사람들이 그들의 어린 시절 억양을 못 머리는 것이 아니라 버리기 싫어서라고 생각이 된다.

또 주변에 몇 분이 미국에서 살다가 오신 분들이 있는데 꼬집어 말 할 수는 없지만 그분들은 미국에 10년 살던 생활 방식을 한국 수십 년 살아온 것 보다 더 고착 된 습관을 가진 것 도 볼 수 있다. 이 또한 그들의 마음속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을 더 잘 받아들이는 심리적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북한 출신이 아니라도 각 지역 출신들이 서울로 몰려들어 삶의 터전을 다져 간 사람들을 서울에서 만나 예기를 하는 것을 보면 거의 모두가 서울 말씨에 가깝게 말을 구사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직업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때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취미나 자신의 장기를 살려 직업으로 힐 수만 있다면 효율 높은 결과를 얻어 낼 수 있고 하는 일 또한 재미있고 보람을 느낄 것이다.

2014년 2월 20일 목요일

강력한 음향 출력이 건물 붕괴의 한 원인 일수도


부산 외대 학생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장소로 쓰인 경주 코오롱 계열사 마우나오션리조트 건물에서 행사를 하다가 건물이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자녀를 대학에 입학 할 때까지 온갖 정성을 다하여 고이 길러 오늘 갑자기 참사를 당하여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이 과연 어떨까 생각 하니비록 남의 자식이라 할지라도 목이 매이는 소식이었다.

오늘 2014 2 20일 뉴스 보도에서 수긍이 될 만한 내용이 음향 설비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음향 출력이 발생하는 순간에 13초 만에 폭삭 내려앉았다는 내용이 있었다.

상당히 일리 있는 한 원인이라는 생각이다물리적 음향 실험에서 공간으로 전달되는 스피커 저음역 임팩트성 저역 진동은 실내 공간에 공진 현상으로 붕괴를 촉진하는 결과를 초래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나도 좀 오래 전이기는 하지만 대형 회관에서 술을 하고 동료들과 춤을 춘다고 대형 스피커 앞에 셨을 때 내가 받는 음압에 가슴이 벌렁거리는경험을 여러번 한 적이 있다음향 스피커에서 발생하는 주파수가 실내 공간과 공진이 일어났다면 그 파괴력을엄청 난 힘을 가질 것이다.

건물 안에서 오디오 장치가 그리 큰 소리가 아닐지라 건물에 일 부분이 주파수가 맞(공진 현상이발생)을 때는 창문이나 구조물 떨림 현상을 본 경험 했을 것이다아래 URL에서 공진 현상이 얼마나 큰 파괴력을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영상이다.
아래는 공진과 관련된 동영상이 있는 곳입니다.

2014년 2월 19일 수요일

터키 문명展(#2)

이 터키 문명전 글은 지인 길-손(김수한) 님의 글입니다. 
전시회를 참관 하시고 직접 자료를 수집하고 설명을 붙인 것입니다. 

이 사진들은 2012년 5월 부터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5개월 동안 "터키문명전(타이틀 : 이스탄불의 황제들)"에
전시되었던 유물들로서 팜프렛에서 발췌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터키는 제철기술을 일으킨 히타이트 문명부터 고대 그리스 문화, 초기 기독교 문화, 중세 비잔틴 문화, 
이슬람 문화에 이르기까지  '인류문명의 퇴적층'이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유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시된 유물들은 톱카프궁박물관, 이스탄불고고학박물관, 터키이슬람박물관, 아나톨리아문명박물관 등 
터키를 대표하는  주요 박물관의 소장품들입니다.
터키의 유물들은 지난번 소개한 "이슬람의 보물들(http://blog.daum.net/swany62687/131)"과
유사성이 많이 있습니다. 

술탄(Sultan), 오스만의 황제  

2. 술탄의 염원 

- 등 잔 -

** 오스만, 14세기경, 놋쇠
**이 등잔은 섬세한 세공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이 등잔은 기하학적 식물무늬, 글 띠들로 장식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하타이(hatyi : 동아시아에서  비롯된 양식화된 꽃과 잎 모티프들로 이루어진 장식 형태), 루미(rumi : 아나톨리아의 
셀쥬크 튀르크인들이 양식화한 새순, 잎, 동물 모티프로 이루어진 구부구불한 장식)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등잔 표면에 제작자의 이름과 술탄(술탄 샤반2세, 재위1363~1377)의 이름이 언급되었기 때문에 오스만 술탄의 역사뿐 아니라
금속공예의 역사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 촛 대 -

**오스만, 14세기경, 놋쇠, 높이 20, 폭 19.
**이 촛대는 금과 은으로 상감되어 있다.  촛대는 조명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이지만 표면에 장식한 섬세한 세공 기법은 
촛대를 예술 작품의 경지에 이르게 하였다. 특히 셀쥬크 시대의 작품들에서 필수적으로 등장하였던 동물 모습이나 
인간 모습을 통해 셀쥬크인의 자연에 대한 열정과 일상생활의 단면을 알수있다. 

- 촛 대 -

**오스만, 14~15세기경, 놋쇠, 높이 20, 폭 21.
** 이 촛대는 절구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은으로 상감되었다. 목 과 몸체의 연결 부분이 부러져 납으로 용접한 흔적이
남아있다.(필자 註) 

- 촛 대 -

**오스만, 14~15세기경, 놋쇠, 높이 22,5 
이 놋쇠 촛대는 네 마리의 용이 원기둥 몸통과 육각형 초 받침을  둘러싼 형상으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용 모티프는 12~13세기, 특히 아르투크 조(1102~1409) 시대와 셀쥬크 시대 작품에서 많이 나타난다.
이처럼 중앙아시아 신화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용 모티프는 이슬람 예술에서도 발견되는 특징을 보인다. 

- 보석 장식 촛대 -

** 오스만, 17세기경, 쇠, 금, 루비, 귀감람석, 터키석, 높이 89.
** 이스탄불의 술탄 아흐메드 1세(재위 1603~1617) 영묘에서 발견된 이 한 쌍의 촛대는 구리 위에  금으로 도금되어 있고
그 위는 루비, 터키석으로 장식되어 있다. 

-튜립 꽃 모양의 초 꽂이 세부 -
 

-코 란 -

** 오스만, 1577년경,  종이에 잉크, 안료, 금, 높이 43,5, 폭 29,7.
** 이 코란은 필사에 주로 사용되었던 나스크 서체로 15줄씩 써 내려간 코란이다. 장미꽃과 중국풍의 구름 장식,
하타이 문양들을 활용해서 코란 구절 주위를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이 코란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디나에 있는
선지자 무함마드의 모스크에서 이슬람력 984년 10월12일  즉, 서기1577년 1월 2일에 완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코란 함 -

**오스만, 16세기경, 나무, 흑단, 상아, 자개. 높이 71, 폭 72.
** 코란을 보관하였던 이 코란 함은 16세기 쿤데카리 기법으로 만들어 졌다. 쿤데카리란 목재를 비롯한 
여러 재료 조각을 못이나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서로 맞물려서 연속적인 무늬를 만드는 기법이다.
12세기 부터 이슬람 전역에서 사용되었으며 오스만 장인들의 큰데카리 기법은 습기나 열에 노출되어도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는 뛰어난 기술력과 기하학적 패턴의 디자인으로 명성이 높았다.
이 코란 함은 1603년 사망한 메흐메드 3세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 코란 함 -

** 오스만, 16~17세기경, 나무, 자개, 대모, 높이 150, 폭 60.
** 코란은 모스크나 주요 왕의 무덤에서 종종 발견되는데, 이와 같은 코람 함은 무덤에 코란을 보관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이 코란 함은 술탄 메흐메드 3세의 무덤에 사용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돔 모양의 둥근 뚜껑은 자개와 거북 등껍질을 사용해 만들었다. 

- 코란 받침 -

** 오스만, 16세기경, 나무, 자개, 대모, 흑단, 높이 47, 폭 47.
** 15~16세기부터 상아, 자개, 흑단, 거북 등껍질과 같은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새로운 방식의 목재 예술품을
생산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와같은 코란 받침이다. 이 코란 받침은 접거나 펼칠 수 있도록 
15개의 이가 맞물리게 만들어 졌다. 이 코란 받침은 이스탄불에 있는 일드즈 하마디예 모스크에서 사용하던 것이다. 

- 예배용 깔개 -

                                                         <--------사진의 윗 쪽

** 오스만, 17세기경, 양모, 길이 151,  폭 115
** 이 깔개는 아나톨리아 반도 서부의 우샥 지역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카펫이다.
우샥 지역의 카펫은 생선비늘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디자인을 사용하였다. 
이 카펫은 세이 바바 유숩 모스크에서 기도용 깔개로 사용되었다. 

- 예배용 깔개 -

** 오스만, 18세기경, 양모, 길이 159, 폭 111.
** 이 기도용 깔개는 콘야에 있는 알라딘 셀축 무덤에서 발굴되었다. 가운데에는 검은 장막으로 가려진
카바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카바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대사원 중심에 있는 정육면체의 구조물로
한 구석에 신성한 검은돌이 안치 되어 있다. 이슬람에서는 카바를 기도의 방향으로 삼는다. 
이 카펫은 기도의 방향을 알려주기 위해  벽에 걸었던 걸개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향 로 -

** 오스만, 1618년, 도자기, 놋쇠, 높이 94,5,  폭 30,  밑 폭 42.
** 이 대형 향로는 금속과 자기를 함께 사용해 만들었다. 중국의 청화백자로 된 몸통에는 두 마리의 용이
대칭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받침 앞 부분에는 향을 넣기 위한 서랍이 있다. 
향로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이 향로가 메카 순례자 무스타파에 의하여 
아흐메드 1세 영묘에 이슬람력 1027년/서기 1617-1618년에 헌납되었다. 

- 향 로 -

** 오스만, 1624, 은, 높이 45, 폭 27.5
** 오스만 시대에는 선지자 무함마드의 탄생을 시로 노래하는 메블리트 의식이나, 기도한 뒤 향을 태우고 
장미향수를 뿌리는 의식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이러한 이유로 오스만 금속공예에서는 향로는 중요한 역활을 하였다.
이 향로는 싸이프러스 나무 형태로 되어 있는데 싸이프러스 나무는 곧고 높았기 때문에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상징이었다. 

- 모스크 장식 -

** 오스만,  놋쇠,  높이 62, 폭 20.5, 지름 4.4,
** 이 모스크 장식은 주조기법으로 만들어 졌으며 양식화한 양귀비 모양을 따랐다. 마디가 있는 긴 몸체 위에
둥근 거울이 자리잡고 있다. 거울 안에는 아랍어로"신은 한분이시다" 라는 글이 쓰여있다.
이 모스크 장식은 모양, 크기, 장식 형태로 볼 때 틀림없이 어느 데르비시(극도의 금욕생활을 서약하는 이슬람교
집단의 일원)교단의 깃대 장식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 천장 장식 -

** 오스만, 18~19세기경, 은, 높이 53, 폭 26,
**타원형으로 된 천장 장식의 윗 부분에는 술탄 압뒬하미드 2세(재위1876~1909)의 투그라(공식문서에 붙이는
오스만 술탄들의 인장 또는 서명)가 있다. 모스크, 영묘 및 궁전의 둥근 지붕과 옥좌의 천장에는 장식이나 보호물,
또는 지위를 알리는 장식을  달았는데 코커넛, 도자기, 타조알 및 여러가지 금속들로 만들어졌다. 16세기 중엽부터
천장에 매다는 구(球)장식은 각종 금속으로 만들어졌다. 

-천장 장식-

** 오스만, 17세기경, 은, 유리, 터키석, 지름 26,5
**이 구형 천장 장식은 칼리드 이븐 왈리드의 무덤에서 발견된 것으로 이러한 형태의 천장 장식은 등잔과 함께 
모스크나 무덤의 천장을 장식하는데 사용되었다. 천장 장식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술탄의 권위를 강조하는
장치였는데 이러한 구 형태는 술탄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 청자 금속장식 성수병-

** 오스만, 14~15세기경, 도자기
** 편병처럼 앞뒤가 납작하게 눌린 이 청자병은 성수를 담아두던 병이었다. 병 표면에는 구름 사이를 나는 두루미 한 마리와
배 한 척이 묘사되어 있다. 현재 이 성수병에서 볼 수 있는 뚜껑과 양쪽의 주둥이는 초기에 제작될 당시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17세기에 목 부분이 부서지면서 물병으로 쓰이게 되었으며, 금 도금한 은으로 주둥이 2개와 뚜껑이 덧붙여진 것이다.
16~17세기의 금속 장식은 주로 부서진 자기를 수리해 자기의 기능을 바꾸기 위한 것이었으나 18세기 이후에는 순수한 
장식 목적으로도 금 은 보석 장식을 더하는 예가 늘어났다. 중국자기들을 수리하고 장식하는 것은 오스만 왕실에서 
중국자기의 위치를 보여준다. 

- 묵 주-

** 오스만, 19세기경, 산호, 길이 40
** 이 묵주는 납작한 산호 알 99개를 엮어서 만든것이다. 묵주는 주로 다이아몬드, 루비, 진주, 에메랄드, 터키석 같은 
보석들과 더불어 색과 냄새가 좋은 나무 그리고 호박, 산호, 상아,  코코넛 뿌리등의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졌다. 

- 카바가 묘사된 타일 -

**오스만, 17세기경, 도자기, 높이 82,  폭 54,5,  두께 2.5
** 여섯개의 정사각형 타일로 이루어진 이 타일 판에는'신성한 모스크'인 카바 신전이 묘사되어 있다.
이 타일 판에 묘사된 카바신전은 건물의 세부적인 특징이 아주 자세하게 표현되었다.
이 타일판의 위 부분에는 아랍어로 '신은 한 분이시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 카바 신전이 묘사된 타일은
17세기 말부터 18세기 말까지 여러 곳에서 주문 생산되었다.

- 서예판 -

** 오스만 1874년. 종이에 잉크, 안료, 금, 높이 65, 길이 52
** 19세기경에 활동한 서예가이자 음악 애호가인 무스타파 이제트 예펜디 에 의해 제작된 이 장식서예는 
터키에서 '힐예'라고 불렀다. 힐예는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를 초상화와 같은 회화가 아닌 말과 글로써
그의 모습과 인간적 특징등을 설명한 것이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자신이 우상화 되는것을 막고자 
자신을 그리는 것을 금지한바 있다. 

- 알라 라고 쓰여진 타일 -

** 오스만, 20 세기경. 도자기, 폭 67, 두께 3.5
**밖으로 돌출된 원형 타일로, 가운데 부분은 짙은 파란색 바탕 위에 백연으로 쓴 "알라에게 영광을" 이라는 글이 있다.
타일은 모스크, 학교, 궁전, 목욕탕 등 건물장식의 필수적인 재료였다. 이 타일이 원형인 점으로 미루어 
모스크 안에 장식되었던 것으로 추정 해 볼 수 있다. 

3. 술탄, 그의 찬란한 삶(上)



- 보석함 -

** 오스만, 16세기경, 옥, 은, 루비, 터키석, 높이 8, 길이 16, 폭 7
** 짙은 녹색의 옥으로 만들어진 보석함으로 위에는 빗장이 달린 뚜껑이 있다. 보석함 외부는 작은 금색 꽃 무늬가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꽃 중앙은 루비와 터키석으로 장식되어 있다. 제작 연대는 1520~1530 년으로 추정된다.

** 나전 서랍함 -

** 오스만, 19세기경, 나무, 자개, 대모, 뼈, 높이 23.5,  길이 34.8,  폭 24.5
** 나무에 자개, 거북 등껍질, 뼈 등이 상감된 나전 장식의 서랍이다.

- 디비트 -

** 오스만, 1730~1754년경 은, 금. 길이 35.5, 두께 8
** 오스만 제국에서 서예는 회화 못지않은 중요한 예술로 인정 받았다. 디비트 라고 불린 이 독특한 모양의 필통은
서예가와 화가들이 휴대하였던 것으로 이들은 끝을 다듬은 갈대에 잉크를 묻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렸다.
잉크통의 뚜껑 위에는 작은 루비가 밖혀있다. 술탄 마흐무드 1세(재위 1730~1754)의 투그라(인장)가 새겨진
이 은제 디비트는 당대에 가장 유명한 디비트 명장인 메흐메드의 작품이며 펜 통의 가장자리에 그의 서명이 있다.

- 필 통 -

**오스만, 18세기경,톰백, 높이 10.5, 길이 37.3, 폭 11.3
** 구리와 아연의 합금인 톰백으로 만들어진 함 모양의 필통으로 꽃과 식물 모양이 양각되어 있다.

- 쉴뤼스 서체로 쓰인 글씨 -

** 오스만, 1723년, 종이에 잉크, 안료, 금, 높이 10.5,  길이 37.3,
** 오스만 왕실의 서예 교사인 압둘라흐 베파이 가  슬뤼스 서체로 쓴 글씨이다. 두 줄의 글씨는 그림자 처럼
교묘하게  포개져 있으며 일부는 얽켜있다.

- 술탄 마흐무드 2세의 초상 -

** 오스만, 1829년, 종이에 잉크, 높이 41, 폭 29.5
** 의자에 앉아 있는 술탄 마흐무드 2세(재위 1808~1839) 를 묘사한 작품으로 프랑스의 인쇄업자 드베리아 가
런던에서 제작한 석판 인쇄물이다. 마흐무드 2세는 오스만 제국 후기의 대표적 개혁 군주로서
1828년에 오스만 제국의 복식 개혁을 이끌었다.

- 술탄 마흐무드 2세의 칙령 -

** 오스만, 1822년, 종이에 잉크, 안료, 금, 높이 95, 길이 55
** 술탄 마흐무드 2세의 투그라가 있는 칙령이다. 이 칙령은 아야쏘피아 산하 24개 모스크에 소속된
상업지구의 상속과 권리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 술탄 압뒬아지즈의 투그라 -

** 오스만, 1861~1876년경, 종이에 안료, 금 높이 65, 길이 70
** 19세기의 서예가인 압뒬페타흐 에펜디의 작품이다. 선명한 코발트 불루 바탕에 금으로 쓰여진 투그라 위에
'언제나 승리한 마흐무드의 아들 압뒬아지즈 칸'이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투그라 왼쪽 아래에는  압뒬페타흐의 서명이 작게 남아있다.

- 술탄 셀림 3세의 투그라 -

** 오스만, 18세기경, 종이에 잉크, 안료, 금, 높이 55, 폭 42
**타원형의 나무판에 그려진 술탄 셀림 3세의 투그라 이다. 투그라의 주위에는 꽃다발과  꽃바구니가 그려져 있다.

- 술탄 셀림 3세의 인장 -

** 오스만, 1789년, 은, 높이 5, 지름 6.2
** 술탄 셀림 3세의 투그라가 중앙에 새겨진 인장이다. 인장에는 1203이라는 날짜가 남아있는데
이는 기원 후 1789년에 해당한다.

- 보석 장식 깍지 -

** 오스만, 16~17세기경, 옥, 금, 에메랄드, 루비, 높이 4, 폭 3
** 오른손 엄지손가락에 끼고 활시위를 당기는데 사용된 깍지이다. 16~17세기경 보석 세공의 예를 보여준다.

- 터번 장식 -

**오스만, 17세기경, 금, 루비, 높이 20, 폭 17, 두께 1
** 금으로 만들어진 카네이션 형태의 터번 장식으로 소르구츠 라고 불렀으며 25개의 루비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소르구츠는 터번을 고정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장식으로 고정을 위한 갈고리가 달린 사슬이 연결 되어 있다.
1915년 술탄 아흐메드 1세의 영묘에서 출토 되었다.

- 터번 장식 -

** 오스만, 17세기경, 금, 다이아몬드, 진주, 루비, 에메랄드, 높이 31, 폭 46
** 오스만 술탄들은 왕관 대신에 터번 위에 소르구츠 라는 깃털 장식을 달았다. 식물의 모양으로 제작된
이 깃털 장식의 중심부는 크고 노란 다이아몬든를 중심으로 작은 카보숑 루비, 꽃잎 모양으로 다이아몬드가
둘러싸고 있어 전체적으로 꽃이 활짝 핀 모양을 보여주고 있다.

          - 터번 장식-                                                                           - 금 보석 장식 -

         ** 오스만, 17세기경, 금. 은,                                             **오스만 ,18~19세기경, 금, 은, 루비,
         에메랄드, 터키석                                                             에메랄드, 터키석, 다이아몬드                                                                        

- 카프탄 -

** 오스만, 18세기경, 실크, 높이 141
** 오스만 왕조에서는 술탄들과 왕자들이 죽었을 때 이들의 옷에 이름표를 붙여서 궁전 보물고에 유품으로
보존하는 전통이 있었다. 이슬람교를 받아 들인 오스만 왕조 이전에도 옷과 터번을 영묘의 관 위에 올려 놓는
튀르크족의 전통이 있었다. 이러한 전통으로 15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사용된 술탄과 왕실 가족의 다양한
의상들이 남겨지게 되었다.

- 마흐무드 왕자의 카프탄 -

** 오스만, 1579년, 실크, 높이 43
**비단으로 만들어진 짧은 소매의 아동용 카프탄으로 기록에 따르면 마흐무드 왕자가 입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술탄 무라드 3세(재위1546~1595)의 어린 아들이었던 왕자는 1579년 9월 7일 사고로 사망하였다.

- 허리띠 -

** 오스만, 16세기경, 상아, 금, 루비, 터키석, 길이 65.5, 폭 4.5
** 이 벨트는 상아로 된 다섯개의 정사각형 판을 작은 조각들로 연결하여 제작한 것이다. 상아 판에는
금을 덧 입힌 우아한 루미 문양이 음각 되었으며 작은 루비와 터키석이 규칙적으로 장식되어 전체적으로
우아한 분위기를 낸다.  이 벨트는 셀림 2세의 묘에서 출토되었다.

- 허리띠의 세부 -


- 허리띠 -

**오스만, 20세기경, 가죽, 벨벳, 은, 루비, 에메랄드,  길이 90
** 허리띠는 지위의 상징이자 봉납물로서 고대로부터 중요한 장신구로 여겨졌다.
단순히 옷을 장식하거나 고정시키는 목적 이외에 일정한 지위나 계급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의미도 지녔다.

- 담배 파이프 -

** 오스만, 19세기경, 도자기, 높이 5
** 붉은 점토로 만들어진 담배 파이프의 담배 통으로,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이스탄불에서 제작 공급하였으나
오늘날에는 그 명맥이 끊겼다.

- 물담배 파이프 -

**오스만, 19세기, 호박, 다이아몬드, 루비, 금, 길이 11
** 담배 파이프의 흡입구로 두 조각의 붉은 호박을 금 고리로 연결하였다.
연결부위 금 고리는 다이아몬드,와 카보숑 루비로 장식하였다.

- 재떨이 -

**오스만, 19세기경, 은, 높이 3, 지름  18.5
** 가장자리에 햄스티치 장식이 되어 있는 담배 받침이자 재떨이 이다.

- 보석장식 커피잔 받침 -

** 작은 터키 커피잔을 꽂아서 사용하는 커피잔 받침으로 12개가 한 세트이다.
금으로 된 받침대에 빨간 에나멜을 입히고 그 위를 은제 꽃 문양과 다양한 크기의 다이아몬드로 장식하였다.

- 백자 청화 커피잔 -

**오스만, 17세기경, 높이 7
** 꽃 문양이 새겨진 백자청화 커피잔이다.

- 은제 커피 화로 와 은 커피 주자-

              **오스만, 19세기, 은, 높이 32                                                  오스만, 19세기, 은, 높이 25
2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