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제59회 현충일이다. 대구 앞산 충혼답에 행사를 오늘도 참여를 했다. 버스를 이용하면서 비록 검은 리본을 달면 버스를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나는 425번 버스에 교통카드로 요금을 지불하고 이용을 했다.
해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그곳에 오는 많은 노인분들이 해가 갈수록 더 연로 해 지는 것을 느끼지만 반면에 연노하신 할머니들의 참가 수는 줄어드는 것 같다. 한 번 생각해보면 6.25 전사자 미망인은 너무 연세가 많아 거기까지 오기 힘들거나 아니면 고인이 된 분이 많아짐으로 참가가 적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도 해본다. 내가 아는 분들만 해도 수년 사이에 4분이 고인이 됐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가 노령으로 많은 분들이 사망하여 생존하신 분들이 없어지는 것과 같은 현상일 것이다. 통일이 되면 다음세대는 더 힘들 수도 있지만 한평생을 남편 잃고 살아오신 분들이나 이산의 아픔을 가진 이산가족에게 큰 선물로 통일이 되기라도 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오늘도 마음으로 기원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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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나로드 운동(V narod 運動)은 1930년대 초에 일어났던 한국의 학생 운동으로 동아일보사가 일제의 식민통치에 저항하기 위해 일으킨 농촌계몽운동의 하나. 동아일보사는 1931년부터 1934년까지 4회에 걸쳐 전국 규모의 문맹퇴치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제3회까지 이 운동을 ‘브나로드’로 부르다가 민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름이라 하여 제4회부터 ‘농촌 계몽운동’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의 금지 조처로 계속하지는 못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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