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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동네 골목 담장에 힘차게 뻗어있는 담쟁이 넝쿨. 나는 이 담쟁이 넝쿨은대단한 식물이라는 느낌을 가진다. 여름에 무성했던 잎은 한 낮 뜨거운 햇볕아래서도 저렇게 긴 줄기 따라 수분을 공급하여 조금도 시들지 않는 능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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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동네 골목 담장에 힘차게 뻗어있는 담쟁이 넝쿨. 나는 이 담쟁이 넝쿨은대단한 식물이라는 느낌을 가진다. 여름에 무성했던 잎은 한 낮 뜨거운 햇볕아래서도 저렇게 긴 줄기 따라 수분을 공급하여 조금도 시들지 않는 능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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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를 막론하고 친구나 아는사람이 있는 곳은 관심이 더 갈 수빡에 없다.
따라서 내가 살고있는 대구도 알리는 기회가 됐다. 2도시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메일 내용에서 보듯이 나는잘 몰랐던 내용을 소개 하고 있다. 이도시가 위치한 곳은 러시아 내륙 남부 카자흐스탄 경계선에 위치하고 있으며 19세기 대규모 무역의 중심인 실크로드에 위치 해있다고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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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4세 어린아이를 구타한 CCTV 장면을 보고 온 나라가 뒤집혔다. 하룻밤을 지내고 아침이 되면 화재 사건과 교통사고가 하루도 나오지 않는 날이 없다. 거기다 토막 살인사건과, 노인 자살, 인질극을 벌인 일 등이 잠잠할 날이 없다. 어디 그뿐인가? 성희롱문제는 또 어떤가. 우리사회에 지도층에 있는 자들이나, 높은 지위에 이었던 분이나, 높은 도덕성을 가져할 대학 교수나 초등학교 교사나 교장이 성적인 문제를 이르키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곳에서 많은 문제가 있다.
우리 한국의 발전은 여기서 멈출 거나 아니면 퇴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문제를 국가 경영만으로 완전 통제는 불가능 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어린이집 아이들 폭행 사건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미 현대사회의 한 감시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현장 CCTV녹화를 인권 문제로 더 이상 넒이지를 못하고 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길거리, 고속도로, 자동차 블랙박스, 병원 수술실, 그 밖에도 개인이 가진 휴대본의 녹화기능 수없이 많은 곳이 원하든 원하지 않던 우리는 타의적으로 우리의 행동이 녹화되어 큰 사건이 발생 됐을 때마다 해결을 하게 해주는 매체가 되었다.
기록된 영상이 악의적인 용도로 사용된 경우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사건 해결의 도구와 단서로 유익하게 사용된 경우가 더 많은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CCTV설치 녹화를 반대하는 사람은 왜 그런지 알 수 없다.
개개인이 평소 보이는 곳이나 보이지 않는 곳이나 나쁜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만약 본인이 오히려 선한 행위를 한다면 더 많이 더 세밀하게 촬영 할수록 좋을 것이다.
만약 하느님이 사람들의 잘 잘못을 가려 합당한 벌을 내린다면 사람들은 나쁜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감시감독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거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부가 어린이집 교사까지 일일이 감독을 하려면 북한의 김정은 집단처럼 사람이 사람을 감시하는 사회로 가야만 하는 한심한 나라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어린이집 교사의 처우가 지나치게 부당한 처우로 근무를 하다 보니 아이들의 성가신 행동이 교사를 짜증스럽게 만들어 그렇다는 말을 했다. 듣고나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부가 6조원아라는 보보조금을 지원함으로 오히려 떡밥에 달려든 고기때처럼 삽시간에 날아가 버린 허무한 비용이 되는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교육 교사가 비록 무보수 이든 낮은 보수이든 사용자와의 약속은 지켜야 하고, 그것을 이유로 어린 아이들에게 자신의 불만을 이유로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정치권과 정부는 어떤 새로운 법을 만들기 전에 많은 보육교사를 면담하여 원인을 들어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그들은 합당한 처우를 받으면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들은 말처럼 부당한 처우로 인한 불만이 아이들에게 돌아갔는지 확인 한 다음 해결 방법을 찯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자료사진: 헤럴드경제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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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세라트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바르셀로나 근교에 있는 산으로,
안도라에서 정 남쪽(150 km)이고 바르셀로나에서는 정 서쪽이다.
아더(Arthur)왕의 성배(聖盃)와 관련한 전설이 있는 베네딕토의 산타 마리아
몬세라트 수도원이 있는 기독교 성지이다.
해발 3000 m 높이에 위치하고 있어 늘 안개에 둘러싸여 있다.
몬세라트산 계곡에 성당, 수도원, 박물관등의 종교적인 건축물들이 있다.
스페인 최고의 건축가 가우디는 신비스런 기운마저 감도는 몬세라트산의 모양에서
모티브를 얻어 지금도 건축중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성당에 적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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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부산에 치료차 여러 번 왔던 친구가 보내준 그가 사는 시내 길거리 풍경 사진. 사실 사진에 대한 설명을 붙이지 않아 내 스스로 길거리 풍경이라 하였습니다.
지난해 여름 여행을 한번 할 생각을 했었는데 그곳은 강원도 동해시에서 여객선으로 갈 수 있는 관광코스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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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2015년 1월 13일 모임을 낮 시내 진골목에서 모임을 한 후 일행 5명이 CGV 영화관엘 갔다. 요즘 진보진영과 보수진영 사이에 말썽이 많다는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 하기위해 간 것이다. 아마 내가 영화를 마지막 본 것은 30년이 넘지 싶다.
요즘 영화는 상영방법도 옛날과는 매우 다르다. 옛날에는 필름으로 된 영화였지만 지금은 디지털 시대인 만큼 영사기 또한 컴퓨터에서 동영상을 보듯 하는 방법으로 하는 모양이다. 옛날에는 극장에 관련해서 지방 영화배급소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을 했던 관계로 잘 알고이었지만 지금 영사 방법으로 상영하는 영화를 내 생애 처음 대하는 기회가 됐다.
영화의 주인공 윤덕수와 영자 두 사람이 살아온 내용이었다.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를 평론한 매스컴의 말들과 진중권이란 사람이 평가한 영화에 대한 평가를 생각하며 또 영화 기술적인 면과 이야기 내용에 대한 종합적인 것을 평가해본다는 마음으로 관람을 하게 되었다.
우선 영사 기술적인 면에서 옛날에 보았던 외국영화 시네마스코프 대형스크린에 비친 영화에 비해서 웅장한 것을 느끼지는 못했다. 필름영화에서처럼 화면에 어떤 흠결을 발견 할 수 없는 것이 필름 돌아가는 소리 없이 조용한 것이 매우 큰 장점으로 생각됐다.
옛날 필름영화 영사기는 고-휘도를 얻기 위해 카본전극을 사용한 아크 방전으로 광원을 사용했기 때문에 화면이 깜빡임 있을 수 있지만 그런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지금의 영사실을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내가 더 이상 알 수는 없다.
옛날에는 영화필름을 프린트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고 필름을 배포 할 때 많은 수량을 제작하지 않다보니 영화가 보급되면 개봉관이 하나 정해지면 인기에 따라 상영일수가 정해 졌고, 1개의 도시에는 1프리트만 제공되어 상영관은 당연히 한밖에 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경북의 경우 대구 시내 개봉관에서 기간이 끝나면 그 필름은 다른 지방도시 몇 곳에 갔다가 돌아오면 그때부터 2류 극장에서 상영을 하게 된다. 2류 극장 상영부터는 2개 극장 동시상영을 하게 된다. 한 개의 필름으로 A/B 극장이 동시상영을 하기위해서는 두 극장사이 상영 시간차를 두는 방법으로 가능 할 수 있었다. 그 때는 두-극장 사이에 필름을 나르는 사람도 하나의 직업으로 정착이 되어 있었다.
그런 반면에 지금은 영화를 같은 시내에서 여러 영화관에서 동시상영을 하는 것을 확인 했다. 이것이 옛날과 크게 다른 것 같았다. 그런 결과로 짧은 시간에 많은 스크린을 할당 할 수 있음으로 단기간에 동원 관객이 수백만을 넘어 천 수백만 명을 동원 할 수 있어 잘 만들어진 영화는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릴 수 있는 것 같았다.
옛날에는 영화 필름에 투자한 투자자와 극장을 가진 쪽이 수익을 5대5 세금을 각각 내는 방법과 6대4의 극장 측이 세금을 전부 부담하는 방법을 택하여 이익을 분배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방법으로 이익을 분배 하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내가 젊은 시절에는 남의 억울함이나 어려운 내용을 보면 목이 메이고 가슴에 통증을 느끼면서도 눈물을 흘린 적은 별로 없었다. 평소 그렇게 해왔던 나는 이번 오랜만에 보는 영화가 손수건을 들게 했다. 6.25때 포항으로 후퇴하던 아군은 아버지 팔에 안겨 있던 나를 내려놓고는 아군 2사람이 아버지를 보국대로 대려 가면서 나를 들판에 혼자 두고 떠났고 그 후 다시는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그런 나의 배경에서 흥남부두 철수 영화장면은 나를 울리고 말았다. 나도 못 사는 시골사람으로서 육군 제대 말년에 월남전에 지원을 하려 했지만 자격이 되지 않아 갈 수 없었다. 서독 광부로 가는 것 또한 너무 고학력자들이 몰리고 해서 시골 촌놈이 지원하기에는 역부족 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 밖에도 광산에서 죽음 직전에 구출 되어 사랑하는 여인이 손을 잡고 실려 가는 장면은 연출 된 장면이지만 가슴 뭉클했고 특히 KBS 이산가족 찾기에서는 극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면은 목이매이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다큐멘터리 영상이라 할지라도 비록 사진이든 영화이든 촬영 주체가 좀 더 극적인 장면을 담아 보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부 진보자라 말하는 자들이 이 영화에 시비를 하는 모양인데 이 영화는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를 진중권은“과거를 미화한 정치영화라고 비판하고 다른 쪽은 아버지 세대를 그린 가족영화 일뿐이라고”평가 했다고 한다.
이런 자가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친다고 하니 참으로 한심하고 분노를 할 수 밖에 없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윤덕수라는 사람과 영자라는 인물을 내새워 흘러간 우리의 어려웠던 시대를 되돌아보고 나라가 어떻게 그 어려운 시기를 극복 했는지를 대변해주는 실화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장면의 구성 기술적인 면 또한 훌륭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예를 들면 흥남부두 철수 장면과 KBS 이산가족 찾기 장면에서 분명히 과거의 기록물을 이용하여 합성 했을 수 있음에도 어색함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 영화는 다른 영화와 달리 위에 언급한 2 장면은 과거 자료 장면을 이용하지 않고 모두 영화촬영 세트 만들고 연출하고 CG로 하기에는 힘들었을 것 같은 생각에 매우 훌륭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다른 영화도 감상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굳세어라 금순아 가사
1.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를 가고 길을 잃고 헤매이더나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이후 나홀로 왔다
2.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진다
영도 다리 난간위에 초생달만 외로히 떴네
3. 철의 장막 모진설움 바꿔 살아간들
천지간에 너와 난데 변함이 있으랴
금순아 굳세어라 남북통일 그날이 되면
손을 잡고 울어보자 얼싸안고 춤도 추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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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나 라고 하는 분이 사는 곳이 울랄 산맥 부근에 있는“오렌부트크”라는 도시는 인구가 50만을 약간 상회하는 도시라고 합니다. 사진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사진 설명을 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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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자전거로 자전거 나들이를 했다. 수성천을 따라 오가면서 새롭지 않은 장면이지만 장면을 담아 왔다. 백로가 물위에서 잔물결에도 정확히 작은 물고기를 낚아챈다. 오리는 저 물거품 속에서 무엇을 열심히 찾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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