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neField: 동물과 인간의 세상이별이 다른점

2014년 3월 27일 목요일

동물과 인간의 세상이별이 다른점


세상 이별(世上 離別)

며칠 전 재종숙모님 별세를 하셨다. 금년에 97세나 되셨으니 장수 하셨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나는 장례식 동안 전에 없었던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도 거역 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하여 초연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또한 한해두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못 다한 일들을 생각하면 생전에 할 일이 아직도 많은듯하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올 세상과의 이별이 슬며시 적정이 되기도 한다.

아직 결혼을 시키지 못한 막내가 걱정이고, 돈과 연결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몇 년 동안 연구한 결과물, 집안 (종문)에 정리하지 못한 일들, 너무 작은 후손 때문에 가문이 이어 질 수 있을지 하는 등등 많은 그리고 끝없는 꼬리를 무는 일들이다.

지인의 게시판에 죽음에 관한 글이 게시되면 좋지 않은 심기를 보이는 분들이 이해가 가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무관심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닐까 싶다. 죽음은 아무도 원하지 않지만 엄격히 말하면 생명의 생명 탄생의 시작은 곧 그 생명이 죽음의 점으로 진행되는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세상에서 생명의 탄생에는 신의 영역을 넘는 제어능력을 확보하고 있고, 그 생명의 연장을 판가름하는 늙고 병드는 것을 제어 할 수 있는 기술 또한 발전 했지만 그렇다고 그 기술로 인해 영원히 살 수 있도록 노화를 방지하고 질병을 치료하고 불시에 발생하는 사고까지 제어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재종숙모님 마지막길인 대구시 명복공원이란 곳을 들렸는데 거기에는 대분부의 사람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지 못 했다. 이제 그곳에는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자신의 형체를 열기에 날려 보내고 마지막은 한줌의 재로 만드는 기계장치가 끊임없이 윙윙대면 돌아가고 이곳저곳 벤치에는 마치 소풍 나온 상춘객처럼 모여 있었다.

건물에는 현대식 전자 알림판이 마치 공항 대합실에 손님을 마중 나온 사람들처럼 전광판을 쳐다보며 가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나는 너무나 슬피 우는 한 젊은 가족과 여인을 보았다. 앞에선 영정사진에는 아직 40을 넘지 않은 젊고 잘 생긴 외모의 남자 사진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10여년이 넘는 동안 등산모임에 동참하여 월 한 차례정도의 정기 산행을 가곤 했다. 그 많은 산을 올랐지만 하늘을 날 수 있는 날짐승이나 네발달린 산짐승이나 그 밖의 어떤 생명체가 죽은 모습이나 죽은 흔적을 본적이 없다. 그 뿐만 아니라 도시의 공원에 수 없이 무리지은 비둘기나 바닷가 갈매기나 해마다 찾아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오리과 철새들이 죽어 흔적을 남긴 것을 본적이 없다.

인간은 수천 년 전에 걸쳐 지금까지 많은 곳곳에 인간의 무덤을 남겨 두었다. 이제야 사람들은 그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지금은 그 흔적이 산자에게 짐이나 장애가 된다고 하여 어떤 대안을 찾고 있다.

우리인간은 야생에 동물의 탄생과 죽음에서 어떤 회답을 찾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신기한 동물들이 맞이한 죽음에서 인간이 배워야 할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