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사단 윤 일병이 집단 구타로 인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여 세월호 사건에 이어 또 한먼 전 국민이 경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도대체 왜 젊은 세대가 이렇게 발전 했는가?
내가 군대생활을 했던 60년대에는 전우애라는 것이 있었다.
중대나 소대 내에 한사람의 병사가 잘못하면 대원 전체가 단체로 기합을 받게 되어 일체감이 있었다고 생각 된다.
당시에는 학력에 관계없이 신체적 조건만 만족 되면 누구나 군복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육군에는 개인적인 능력 차이가 많이 나서 저능한 동료를 “고문관”이란 말을 하기는 했어도 그로인해 종료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가끔 가다가 좀 괴팍한 하사관이 부대원을 괴롭히는 사례는 그때도 있었다.
몇 년 전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온 친구가 중국 길거리에서 젊은 사람들 싸움이 벌어졌는데 아무도 말리지 않고 구경만 하드라는 말과 함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우리는 어떤 국민인가? 일본 지하철에서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려다 죽은(이수연) 사건 잘 알고 있듯이 한국인은 의협심이 강한 국민이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와주고 길가다 힘없는 사람이 구타를 당하는 장면을 보면 이유 불문 구타하는 자를 뜯어 말리는 힘없는 자를 무조건 도우는 것이 한국인 아니던가.
그런 한국이 왜 이렇게 잔인하게 변했을까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지식수준이 높아진 사회가 되고 어릴 때부터 컴퓨터 게임에서 서로 죽이고 죽는 장면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인 것 들이 인간성을 상실 시킨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군인은 부대원의 전우애라는 것이 있어야만 하고 지휘권자는 그것을 키우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돌출 행동을 하는 한 놈을 분대, 소대, 중대의 하급 단위의 지휘권자는 철저히 통제를 해야만 할 것이 요구된다.
고문관 같은 부대원이 있다면 전 부대원은 복무중에 더이상 군 생활에서 뒤 처지지 않게 도와주어 낙오병이 되지 않게 하여 무사히 의무를 마칠 수 있게 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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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5일 화요일
왜 한국인이 이렇게 잔인해 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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