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TV] 머리에 빛을 쪼여 알츠하이머 치료 기술 개발 |
2015년 10월 7일 수요일
6.25 참전 미군에 공헌한 한국 "말" 한마리(Sergeant Reckless Monument Dedication)
Sergeant Reckless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인터넷에 올라온 관련 정보
오늘 아침 지인의 보낸 이-메일에서 알게 되어 검색을 했더니 이렇게 많은 정보가 있는 것을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우리는 인천상육작전을 성공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고, 육이오에 4만이 넘는 미국 젊은이가 한국전에 목숨을 바친 것조차 잊어버리고, 강정구라는 인간은 한국을 구한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려 했던 것을 생각하면 전장에서 헌신한 말 한 마리도 이렇게 그의 헌신을 기리는 미국인에게 너무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
사량도 등산 2015/09/20
사량도는 이번에 4번째로 등산을 하기로 결심을 했다. 아마도 마지막 기회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급적 의미 있는 등산을 할 생각을 했다. 일반적으로 산행을 트래킹 이라고 했지만 이번은 등산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새벽 5시에 이어나 6시 20분에 승차를 하고 오전 10시 30분에 목적지 가오치 여객터미널에 도착을 했다. 주민등록증 없이는 승선 허락이 되지 않는 관계로 주민증 미소지자는 터미널 좌측에 무인 민원 발급창구를 역할을 하는 장치가 설치되 신원확인 증서를 발급 받을 수 있었다.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다.
지난 3차례는 삼천포에서 이번에는 통영시 가오치라는 곳에서 가게 되었다. 전에는 사량도 가는 곳이 이곳에 있는지 몰랐는데 이곳에는 버스를 실을 수 있는 큰 배가 취항이 되고 있었다.
사량도는 상도와 하도가 있는데 우리가 가는 곳은 상도라고 한다. 금년 2015년에 완공을 목표로 상/하도를 연결하는 현수교 공사가 진행 중이다. 삼천포에서 가는 배가 닿는 곳은 사량도 내지항 이고 가오치에서 가는 배는 상도 면사무소가 있는 사량도 여객터미널과 연결 된다.
등산 계획 이 처음에는 내지항에서, 월암봉, 불모산, 가마봉, 옥녀봉, 대항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사량도 여객터미널, 옥녀봉, 가마봉 순서로 변경이 됐다.
섬에는 섬을 전체를 일주 할 수 있는 관광버스가 있었는데 단체로 이용하는 경우 4천원의 운임이 든다고 했다. 지난 3차례의 등산은 옥녀봉 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 했는데 이번은 먼저 오르게 된 곳이 옥녀봉이었다. 옥녀봉은 이름과는 걸맞지 않게 매우 힘든 곳이었다.
|
천덕구러기가 된 은행알 (안타까운 마음에~)
옛날에는 요정 같은 곳에서 은행알을 굽거나 안주를 만들어 내놓은 고급 술안주였다.
오늘 (20151002)아침 KBS1 뉴스에서 전국 길거리에서 가로수에서 떨어진 은행 (먹는)알이 짓밟혀 뒹구는 현실에 관한 뉴스가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은행 알을 따면 고발당하는 문제로 내 집 앞 도로에 짓밟혀도 손대지 않았고 조심스럽게 행동을 했다.
우리는 지난해에도 어제 저녁에도 아내와 나는 길가에 밟혀 터지는 은행 알이 아까워 어제저녁 큰 비닐봉지에 긁어 담아 집으로 가져왔다. 아내가 과육을 발려 내는 힘든 수고를 해야 할 것이 걱정이라 더 많이 가져 오지는 말아야 할 것 같다.
저는 지난해에도 그 전해에도 같은 말을 http://sseeman.egloos.com/11133304 했다. 한 사람의 글에 의해 전 국민과 지자체마저 그 귀하게 여겨졌던 은행 알이 천덕꾸러기가 됐다.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금강산 수공 작전에 대비하여 서울시를 보호하기 위해 평화의 댐을 만들 때 온 국민이 정성을 모아 댐을 완성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김영삼 정권은 그 평화의 댐을 청문하여 사기극으로 만들었던 것을 나중에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다시 추가 공사를 하였던 것을 우리 국민이 알고 있듯이 은행 알의 중금속 경고 때문에 건강에 관심이 많은 온 지자체와 국민은 밟혀 터지는 은행 알을 거들 떠 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해마다 생산되는 그 소중한 먹거리를 쓰레기로 버리는 어리석은 생각을 되돌려 놓아야 할 것이다. 수없이 많은 대한민국에 대학 연구소가 이를 반박하는 연구를 하였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전에도 말을 했지만 지금은 승용차 모두가 무연 휘발유를 사용하고 있다. 옛날에는 보통 휘발유에는 옥탄가를 높이기 위하여 4에틸납을 첨가 한 휘발유를 연료로 사용함으로 배기가스에 납(pb)성분이 배기가스로 대기를 오염 시킨 것을 지금은 무연 휘발유를 사용 함으로 배기가스에 납 성분이 없다고 말해야 한다.
내가 아는 납은 자연에서 존재하는 금속 물질이지만 산화(酸化)는 되지만 이온화(ion化)는 자연 상태에서 되지 않는 매우 안정된 금속으로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는 이상 다른 금속처럼 물에 녹아들지도 않고 해서 식물 뿌리에 납덩이가 있다 해도 식물은 납 성분을 흡수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유연 휘발유에 들어 있는 납 서분은 인위적으로 휘발유에 액체 상태로 섞어서 연소시킴으로 대기중에 방출 되는 것이 문제인 것을 지금은 무연 휘발유 승용차만을 생산 사용함으로 자동차 배기가스로 인한 납 오염은 걱정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 됩니다.
나는 과학적 전문 지식이 없는 평범한 시민으로 상식적인 지식만으로 감히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비록 비전문적인 지식이지만 많은 분들이 관심 있게 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ginkgo nut recipe <-- 클릭
가운데 노란 색의 은행 알은 2일 동안 냉동실에 얼렸다 해동한 것으로 색갈이 변한 것 이외에 맛과 쫀득한 식감은 같았다. 오래 동안 보관을 하기위해 냉동보관 하기위한 시험이었다. 지난 경험으로 보관이 잘못 되면 오래된 은행 알을 딱딱하게 변하여 먹기에 좋지 않은 경함을 해서 금년에는 냉동 보관을 하거나 냉장 방법을 이용할 생각이다.
|
가을 길 가 풍경.
길 가 포도 색 작은 열매와 진 붉은 열매가 가을을 인증 하고 있다.
나는 이 한해 동안 이룬 것이 없다만 길가에는 이렇게 아름답고 풍성한 가을이 열렸다.
왠지 세월이 너무 빠르다는 느낌이다.
|
역사기록은 하나로 통일 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역사교과서를 국정교과서 화 할 것이라는 내용의 보도를 오늘(2015/10/06) 아침아 나왔다. 관련하여 나와 같은 사람이 언급 할 것은 아니지만 나의 개인적 견해는 너무 늦었고 당연한 내용이란 생각을 해 본다.
내개 생각하는 역사란 사전적 의미 그대로 작게는 공산품이 생산 되는 과정의 사실 기록, 한 해 동안 농작물을 씨 뿌려 수확 시 까지, 한 생명이 탄생하여 살아온 과정, 한 회사가 만들어져서 지나온 전 과정과 한 나라가 지나온 과정을 기록한 전체를 역사라고 본다.
공산품이든 한 생명체의 이력이든 국가가 지나온 일들의 기록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 기록을 보고 평가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사물을 두고 기록하는 사람이 여렀이고 그 내용이 각각 다르다면 그것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훗날에 혼란이 있고 그 진위 판단이 어려워 그 기록을 바르게 사용 될 수 없을 것이다.
나라의 이력을 정확히 하나로 통일하여 정확히 기록 하고 그 기록을 후세가 그 기록을 배워서 잘 잘못을 파악하여 잘못 된 것은 바로잡고 잘된 일은 더욱 발전 시켜 더 좋은 상품을 만들고 더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고 회사는 더 발전 할 수 있게 하고, 한 나라의 발전 또한 과거의 잘 잘못을 고치고 발전하여 좋은 나라로 발전하게 하는 것에 역사의 기록과 그것을 배우는 의미 일이다.
만약 예술에 관한 내용이라면 이력 기록 자체를 다양한 시각으로 보고, 듣고, 느낌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한 씨족의 역사를 기록한 족보를 각각 다르게 기록한다면 어떻게 될까? 후 일 그 족보를 후손이 어는 것도 믿지 못할 것이다. 인간이 기록하는 관계로 설사 당시에 시각차이로 불만이 있다 할지라도 그 문제는 그 시점에 이견(異見)을 조정하여 하나로 기록해야만 후세 혼란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의 역사를 기록하는 문제를 두고 야당과 일부 사회단체나 개인이 국정 화(국가 주도)하는 문제를 강력 반발할 것이라고 한다. 왜 야당은 이렇게 반응 하는 것일까? 참으로 의아한 속내를 알지 못할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잘 알려진 결과로 전교조라는 단체가 국가가 지양하는 방향과 무관하게 자기 멋대로 지난 역사를 가르치는 혼란스런 상황을 빨리 하나로 통일된 내용으로 정리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하나의 생산품에는 하나의 생산이력이, 한가정에는 하나의 족보가, 한 나라에는 하나의 역사가 있을뿐이다.
|
2015년 9월 17일 목요일
다이아몬드의 충격적인 결과[링크]
|
실크로드 경주 2015 참관
실크로드 경주 2015에 내외종 5가족이 경주에 모여 하루를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11시경에 도착하니 주차장이 텅 빈 상태라 관람객이 너무 적어 내가 관계할 일은 아니지만 괜히 걱정이 되었다.
우리는 여러 곳을 다 볼 생각을 접고 오늘의 행사 안내에서 백결공연장에서 12:30 ~ 13:00 우즈베키스탄 공연을 먼저 보기로 했다. 우즈베키스탄 공연단은 혼례식을 스토리로 하는 공연 같았다. 출연진의 외모도 모두 준수하고 특히 여성출연자의 미모가 좋았다. 공연은 지루함이 없을 정도로 연기행동이 활동적이고 재미기 있었다. 끝 무렵에 앞줄에 위치한 어린 관람자에 다가와 함께 하려는 것이 퍽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다음 오만 공연 순서 까지는 1시간의 여유가 있어 정심을 먹을 수 있었다. 바자르 에서는 식당 선물 가계에서 우리 돈을 쓸 수가 없고 환전을 해야만 했다. 바자르에서만 통용되는 상평통보같이 생긴 동전으로 환전하여 사용한다. 시장에는 각국의 전통 음식이 있었는데 우리는 러시아 음식을 하기로 했다. 러시아 음식 중에 “삼사”라고 하는 3각형 빵 속에 다진 고기(양고기?)를 넣어 구운 빵과 “양 꼬치”를 정심으로 대용했다. 식사 중에 시장 가운데 작은 개방형 공연장에서 외국 출연자들이 하는 작은 공연이 볼거리를 제공 했다.
식후에는 중동 국가 오만이 하는 공연 14:00 ~ 14:30를 관람하게 됐는데 처음부터 분위기가 무겁고 흰 색 전통의상을 입은 7인조 연주가 있었는데 조금 보다 퇴장을 하였다. 음악이 지루하고 분위기가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다.
다음으로 전에 없던 새로 생긴 솔거 미술관을 관람하였다. 지역 출신들의 작품을 전시하였는데 평소 미술작품에 대한 이해 없는 입장에서 깊이 있는 감상은 하지 못했다.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경우는 각자 관심이 다르기 때문에 때로는 보고 싶을 것을 포기 할 수도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문화센터 공연장에서 하는 “바실라” 공연을 보기로 했다. 이 공연은 할인 된 관람료가 30000, 20000, 10000으로 비싼 느낌이다. 여기는 경노우대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뒷좌석으로 가장 값이 싼 것을 선택했다. 우리는 이것을 영화로 생각 하고 막연히 영화한편 본다는 생각을 했었다.
처음 시작은 영화같이 시작되어 영화인지 연극인 알 수 없이 전개 되었다. 이 공연은 “페르시아 왕자 아비틴이 압제자 쿠쉬를 피해 실크로드를 거쳐 황금의 땅 바실라(신라)로 망명해 공주 프라랑과 결혼하고, 그들의 아들 페리둔이 압제자를 물리쳐 페르시아의 영웅으로 떠오른다는 내용이다.” 대사가 전혀 없고 음악도 가사가 없는 오직 분위기 음악과 행위 자체뿐이다.
화면이 마차 영화 같은데 자세히 보니 연기자가 직접 연기를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장면전환이 영상에서 실제 연기로 전환 되면서 기술적인 점에 나는 관심을 두고 관람을 하였다. 지금까지 내가 본 영화 오페라(영상으로), 음악회, 뮤지컬, 연극, 영화 등에서 예전에 전혀 보지를 못했던 방법이었다.
이번에 본 것을 무엇이라 해야 할지 분류를 할 수 없다. 아마도 우리가 새로 만들어 낸 창조적인 공연으로 새로운 장르로 분류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인터넷에서 확인 된 이름이 “무용극” 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공연 마지막에 관중으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은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안 보신 분은 한번 보시면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
중국이 6.25에 김일성만 도와주지 않았다면?
일본은 아직도 왜 이렇게 폐허가 됐는지를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의 9원 3일 전승절 행사에 참석 하는 것 때문에 “日산케이 신문 칼럼, 박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하여 우리 한국인의 감정을 매우 불쾌하게 만든 기사가 있었다. 참으로 괘씸한 왜놈(Jap)이라 말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와 일본 미국과 중국을 한 번 생각해 보면 흔히 말해왔던 세상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을 실감 할 수 있는 지금의 관계라 생각 된다.
우리는 일제 강점기(日帝强占期, 1910년 8월 29일 ~ 1945년 8월 15일)를 동안 많은 감정이 쌓일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고, 일본은 태평양 전쟁(1941년 12월 7일) 일으켜 미국과 전쟁으로 진주만 공격을 하여 미국 전함 애리조나 호를 침몰 시켜 미국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고, 일본은 1937년 7월 7일 일본의 중국 대륙 침략으로 시작되어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중국을 침공 했고, 일본은 1904년 2월 8일에 발발하여 1905년 러시아와 전쟁을 하였고, 1950년 6.25에 북한이 자행한 남침 시에 중국은 북한을 도와 유엔군과 한국을 상대로 싸웠던 기록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역사이다.
중국이 북한 김일성의 남침에 군대를 파견하여 우리와 싸웠던 것만 제외 한다면 2차 대전 1939년 9월 1일부터 1945년 9월 2일까지 모두가 일본으로부터 침약을 당한 피해국 들이다. 우리 한국이나 중국이나 미국이나 모두가 일본과의 전쟁을 끝 낼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사용한 2방의 원폭으로 불세례 받은 일본으로부터 항복을 받은 것 때문이다.
그렇다면 날자는 다르지만 중국의 전승절과 우리의 광복절과 태평양 전쟁의 종결은 미국에 의한 광복과 전승 절이 되는 만큼 미국도 우리도 중국에 그리 기분이 언짢을 이유는 없지만 지금 중국의 지나친 힘을 과시하는 것 때문에 미국의 입장에서 속이 편할 리는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일본과 미국의 관계는 지금 가까운 사이 지만 미국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후유증이 많은 무기를 사용하여 일본으로부터 항복을 받은 만큼 일본을 도와준 것이 가까운 사이로 됐고, 특히나 한국전 때 일본은 한국 때문 미국으로부터 많은 경제적 해택으로 다시 살아남으로 적국이 형님 국으로 바뀐 역사를 가진 자들이 함부로 입을 놀려 데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 됐다.
만약 6.25만 아니었다면 우리는 중국과는 부정 할 수 없는 고대 역사로부터. 근세의 일본의 만행에 투쟁한 항일투쟁의 장소를 제공받은 것과 임시정부 청사까지 잘 보존 해준 중국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 된다. 만약에 중국이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의 중국내의 활동을 막았다면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발붙이고 항일 독립 운동을 했겠는가를 미국도 양해를 해야 할 일이라 본다.
하지만 미국은 6.25에 한국의 공산화를 막는다는 것 때문에 4만이 넘는 고귀한 젊은 목숨을 거지같은 생소한 나라에 와서 잃은 것을 대한민국 국민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중국 또한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고 한미동맹의 장애가 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본은 아직도 왜 중국의 전승절이 생겼는지를 모르는 인간들이 나라를 맡아 운영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그 전만 해도 비교적 양심을 가진 정권이 있었는데 아베라는 자가 총리직을 수행하면서부터 옛 강도질한 것도 잊은 채 한 때 가까웠던 우리를 더 멀리 밀어내는 행위를 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 최강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가까이하는 나라도 변화 된 것이다. 이것이 일본이 느끼는 가장 기분 나쁜 약 오르는 일이 될 것이다. 일본인의 정직함은 세계의 본보기가 되고 칭찬 받을 만하다. 하지만 현재의 방법으로 국가를 경연한다면 일본은 쇠망의 길에 더 빨리 들어서게 될 것이다.
상해 임시정부청사: http://sseeman.egloos.com/9570219
|
비교되는 스포츠와 연예인 두 인기 여인의 비교
거만한 한사람 때문에 광복 70주년 행사에서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질 연결이 실패하고 말았다. 연결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극일 (克日)을 하자는 다짐을 하는 상징적 연결이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는 그 마음을 끊어놓은 것이다.
나는 금년 광복 70주년 1부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을 했다. 많은 내용 중에 사회자가 특별한 분을 소개 한다고 하여 누군가 궁금했는데 나타 분은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의 인사가 끝나고 순서에 따라 맨 앞줄 가운데 대통령이 서서 함께 손을 잡고 함창을 하는 장면이 있었다. 나는 당시에 개개인의 행동이나 인상을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김연아는 대통령이 손을 잡을 때 손을 빼고 피하는 장면을 알게 됐다. 이 계집아이가 왜 이러나? 그 장면은 대통령이 김연아만을 예뻐서 잡는 손이 아니라 함께한 모두가 88올림픽노래 “손에 손 잡고~~” 구절처럼 가같이 손을 잡고 온 국민이 마음을 함께하는 장면 이었다 그런데 보도된 장면을 보면 대통령이 잡는 손을 빼는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장면을 카메라가 잘 포착을 해서 나도 알게 되었다. 그날은 여당, 야당, 시장의 상인이 함께 노래하는 팀도 있었고 1945년 출생 팀도 있었다. 그 장소에서는 누가 높고 낮은 분별없이 모두가 함께 부르는 기쁨의 장이었는데 김연아가 찬물을 끼얹은 결과를 가져왔다.
보도가 되자 어떤 시청자가 대통령에게 첨에 인사하는 장면을 반박하기위해 올린 장면도 방영 되었지만 그것은 보이는 장면에서 어쩔 수 없이 했던 인사로 볼 수밖에 없다. 내가 보는 느낌은 어떤 치한이 아가씨 손을 잡으려하는데 그럴 때 하는 행동 같아 보였다.
대통령의 왼 손은 옆의 아주머니와 잡혀 졌지만 김연아는 손을 빼서 앞줄 무두가 이어져야 할 연결이 김연아의 손 때문에 끊어졌다. 배낭을 진 진행자가 손을 좌우로 잡도록 주문을 하는 것 같은데 김연아는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잡히는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 인정 할 수밖에 없다.
만약 대통령이 아니고 다른 어떤 사람이었다면 속으로 잘난 척 하는 그 김연아의 행동에 기분이 얼마나 나빴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한참이나 지난 일이지만 이렇게 거만한 아이가 더 이상 출세를 한다면 기고만장한 여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볼 때 이런 마음씨를 가지고 더 이상 출세를 하면 문제가 될 것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많은 국내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이영애씨는 결혼과 사생활을 조용히 하면서도 조용한 가운데 이 사회를 훈훈하게 만드는 물질적 마음적 봉사하고 겸손한 선행은 많은 국민과 해외까지 감동을 주어 크게 비교가 된다.
|
북한의 두더지 출입구를 잘 공격하면~
http://blog.daum.net/trent/8214030http://blog.daum.net/trent/8214030
지금은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가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싸움이란 내가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싸움을 좋아하는 인간은 맹수보다 더 잔인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자, 호랑이나 곰 등의 육식 동물은 살기 위해서 살육을 하지만 싸움 거는 인간은 배고픔과는 무관하게 살육전을 한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해라”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평화를 원한다면 힘을 키워라 라고 하고 싶다. 결국 그 말이 그 말이겠다. 아무튼 내 경험으로는 낮선 개가 짖어대며 덤빌 때 도망가면 달려들어 물게 된다. 그럴 땐 뒤돌아서 눈싸움을 하듯 하면 그 개는 짓기만 하면서 물지 않고 꼬리를 내리게 된다.
전쟁이 다시 재개 된다면 북쪽에는 전 지역에 두더지처럼 땅굴을 파놓고 전쟁이 벌어지기만 하면 쥐새끼가 굴속에 들어가듯이 대피를 할 것이다. 평양은 지하철이 지하 150메타 땅 속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군 비행기 격납고마저 땅속에 만들었다고 한다. 잘만 이용하다면 전쟁 시에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을 것이다.
북한이 갖지 못한 것을 우리가 가진 것이 정지위성인데 북한의 지하땅굴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그 격납고의 출입구, 평양 시내 지하철 출입구, 기타 중요 군 시설의 출입구만 잘 타격하여 막을 수만 있다면 그대로 무용지물로 만들어 무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기대는 우리 군이 북한의 중요 시설들의 지하 화된 출입구를 부셔버리기만 한다면 전쟁은 쉽게 풀릴 것이라는 생각이다.
휴전선에 전진 배치된 각종 무기를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공군력으로 신속히 무력화 시켜야만 우리가 피해를 적게 볼 것이다. 군사 전문가와 많은 무기 전문가들이 잘 알고 있겠지만 포 종류는 크게 2종류가 있는데 직사포와 곡사포가 있다. 속도는 늦지만 곡사포는 가시적으로 장소 판단이 안 되는 화기이므로 이것을 빠르게 찾아내어 산 너머에 숨어서 공격하는 곡사포를 신속히 타격 해야만 할 것이다.
|
오랜만에 가 본 IT융합 액스포
어제 2015/08/20 뉴스에서 대구 엑스코(EXC))에서 IT융합 엑스포를 개최했다는 뉴스를 듣고 혼자 가보기로 했다. 젊은 사람(65세 이하)들은 입장료가 있고 그 이상은 입장료 지불 대신 초대권을 받아 무료입장을 할 수 있게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최초 전자 전람회 년도를 기억 할 수 없지만 그 장소는 장충체육관으로 기억이 되는데 확실하지 않다. 그 다음이 장소가 경복궁에서 개최된 것으로 생각이 되고, 이후 강남에 전문 전시장 코엑스(COEX)가 생겨난 것으로 대략 기억한다.
나는 근래 들어 각종 전시회를 옛날처럼 참관 할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한 번 보고 싶어서 찾아 갔었다. 옛날에는 전자전시회라 했지만 지금은 아마도 그 이름으로 하는 전시회는 없는 것으로 안다.
이번 전시회 이름은 “대한민국 IT융합 엑스포”와 “LED & DISPLAY 전시회”가 동시에 개최 되는 것 같다. 요즘은 많은 분야에 약자를 많이 쓰다 보니 어떤 전시회인지 잘 인식하지 못 할 때가 많다. IT (Information Technology)는 이미 널리 쓰이는 용어로 정보통신이란 의미 일 것이다. 가끔 유사한 용어로 ICT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라를 용어도 많이 쓰이게 된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급속히 발전된 드론이 젊은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다. 이미 값싼 2~3만 원대의 작은 드론에서 수백만 원 대의 고급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메이커와 레벨의 제품이 출시된 모양이다. 크고 작은 모든 제품은 모두 리모컨으로 조정이 되었다.
삼성과 엘지가 전시한 곡면 UHD TV의 영상은 해상도가 지나치다 싶은 느낌마저 들었다. 영상은 선명한 원근감이 확실한 영상을 플레이함으로 입체감이 들었다. 리얼 3D 영상이라면 폴라로이드 안경을 사용해서 두 눈을 이용해서 영상을 공간 합성해야만 입체가 될 것이다. 입구에 특수 안경을 사용하여 시연을 하는 곳이 있었는데 젊은 사람들 때문에 직접 착용하는 체험은 못했었다. 그 곳의 영상은 동시에 2개의 화면을 플레이 하면서 특수 안경을 착용 함으로 입체영상을 구현 하는 것 같다. 참고로 국내 첫 3D영화는 3장면이 하나로 합성되는 방법을 사용 한 것으로 안다.
이번 전시회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 했는데 그것이 생기원(생산기술 연구원), 에트리(ETRI) (Electronics and Telecommunications Research Institute)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국립재난안전 연구원, 첨단정보통신융합산업기술연구원 같은 기관과 연구소가 전시를 한 것이 특별했다. 생기원 부스 담당자에게 잠시 대화를 나누면서 직접 전시하는 방향으로 바뀐 것은 매우 좋은 방향이라고 칭찬을 했다.
차제에 덧붙임 설명을 한다면 초기 전자연구소는 구미 인동에서 시작 되어 대전으로 분리하면서 지금의 명칭으로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전신이 구미에 있는 전자기술연구소 시절에는 너무나 취약하고 일본에 비해 수십 년의 기술 격차가 나는 것으로 초라했었다. 당시에 미국 반도체 메이커가 만든 원칩(One chip)―프로세서를 모방하여 개발을 시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당시 구미 전자기술연구소에 몇 번 방문을 하면서 TTL IC 검사 용역을 하는 정도의 걸음마단계의 반도체 기술이 지금처럼 발전 되리라는 예측을 전혀 하지 못했었다. 80년대 중반 삼성이 64K DRAM을 만들었다고 할 때 아무도 오늘처럼 대-성공을 예측하지 못했고 오히려 관련 연구원 까지도 비관적 예측을 했었던 것을 기억하게 된다.
당시에 일부 연구소 사람들마저 왜 Active Device(예: CPU, MCU)를 하지 않고 Passive Device (Memory, Logic)를 하는가? 라는 말을 하기도 했었지만 삼성이 메모리를 선택한 것은 정말 잘 된 선택이었다. 당시에 메모리는 세계의 일류 반도체 업체가 수동형 반도체 소자의 미래를 좋게 보지 않았던 것과 지금처럼 폭발적으로 수요가 있으리라는 예측을 하지 않았다고 보아진다. 물론 이 말은 나의 개인적 견해일 뿐 이다.
|
피드 구독하기:
글 (Atom)